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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Aug 12. 2021

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일곱 해의 마지막(김연수, 문학동네, 2020)을 읽고

Ne pas se refroidir, Ne pas se lasser

(냉담하지 말고, 지치지 말고)


"어떤 두려움이나 부끄러움도 없는 선한 표정으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라며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그런 곳에서, 오래전에 잊어버렸던 시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듣게 되니 그의 목구멍으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랐다. (중략) 그 시의 한 음절 한 음절이 쇠도끼 날처럼 그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몇 번을 다시 읽으며 똑같이 울컥거린다.

자신의 안에서 죽어가는 단어들을 보며

천상 시인이 느꼈을 좌절감 때문일까.

내 안에서 죽어가는 단어들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백석의 시를 좋아했다.

눈밭을 걷는 흰 당나귀의 흥흥거림과

수줍은 설렘으로 나타샤를 사랑하는

시인의 순수한 마음이 좋았다.


그런 시인이 한국전쟁 이후 사라졌다.

이 소설은 그 이후의 일곱 해,

그리고 그의 마지막을 쫓아가고 있다.


획일적인 사상만을 강요하며

자유로운 창작을 억압해가던 그 시기.

시인도 함께 유폐되었다.


묵음과 무채색.

그것이 그즈음 그 시인의

내면 풍경과 같았으리라.


어떤 의미도 찾을 길이 없는

비애뿐이었던 그때,

그늘은, 빛이 있어 그늘일 테니

지금 그늘 속에 있다는 건,

어딘가에 빛이 있다는 뜻이고,

다만 아직 도달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믿고 싶었던 그때,


시인은 살아남는 것과

존재하는 것 사이에서 방황한다.


삼수하고도 독골에 도착했을 즈음,

막다른 길이라며 절망한 그 끝에 도착할 즈음.

역설적이게도 시인은 비로소 깨닫는다.


존재, 그리고 삶.

무상, 그리고 죽음까지.

모든 것은 양면일 뿐이었다.


끝내 버릴 수 없었던 것을 찾아낸 게

절망의 끝에서 임을 함께 보면서

요즘 겪던 내 무기력의 출구를 찾은 듯하다.


아름다운 시절의 끝에는

적막이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 시절, 그 세상에서

끝내 버릴 수 없는 어떤 것.

그게 삶을 지탱하는,

존재를 지탱하는 원동력 이리라.


백석에게도 그러했기를 바라는 마음은

저자만큼이나 나도 같았다.


지독하게 간절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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