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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징 Mar 29. 2022

이별한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걸어가던 길, 불이 꺼진 어둑한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통유리에 붙여진 임대문의 글자를 바라보았다. 밤이었지만 가로등 불빛, 상가들마다 밝히는 불빛으로 주변은 어둡지 않았지만 오직 이곳만 다른 세계에 존재하듯 밤을 알려주고 있었다. 


집과 버스정류장을 반복적으로 오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동네의 세세한 곳까지 기억하게 된다. 홀로 불 꺼진 이곳의 예전 모습도 기억하고 있다. 빵들은 언제나 질서 정연하게 놓여있었고 출근 시간대엔 빵을 살지 말지 고민하게 만드는 고소한 냄새를 풍기던 곳이었다. 지금은 반듯했던 인테리어는 모두 사라지고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와 여기저기 뒹구는 먼지만이 초라하게 남겨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이런 소리가 새어 나왔다. 

"너도 주인을 잃었구나"


그 즘의 나는 무얼 봐도 쓸쓸했고 발라드를 들으면 온통 가사가 내 이야기 같아서 눈물을 쏟던 상태였다.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는 돌멩이만 봐도 감정이입을 하는 이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반쯤 미쳐있는 여자였다. 


어느 날 임대문의 글자가 떼어지더니 그 공간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게 보였다. 먼저 어지럽게 굴러다니던 쓰레기와 먼지가 깨끗하게 사라졌고 다음으로 책장, 테이블, 의자 같은 것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어느 날은 테이블 위에 책들이 가득가득 쌓여 있었다. 매일 그곳을 지나가며 달라지는 공간을 바라보았다. 쓸쓸해 보여 걸음을 멈추게 했던 곳이 따뜻하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초라한 모습은 잠시였다. 이렇게 반듯한 독립서점이 될 공간을 난 왜 그토록 안쓰러워했을까. 


두려움이었다. 지금의 쓸쓸한 모습이 끝나지 않고 내내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두려움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인간은 이렇게나 어리석다. 현재에 갇혀 미래를 그려내지 못한다.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을 알면서도 단호하지 못한 나의 성격 때문일지 모른다. 

   

이런 나의 성격을 미워했다. 조금만 더 냉정하고 단호할 순 없는 걸까. 많은 밤 잠들지 못한 채 잔인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괴로운 답을 내어 놓는 나를 놓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나인걸. 미워하지 않고 괜찮아지는 방법을 같이 찾아주기로 했다. 한 번에 바뀌지 않아 답답하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다시 말해주기로 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때가 되면 봄이 돌아오듯 사랑 역시 때가 되면 다시 하게 될 것이다. 봄 안에 숨어있는 꽃샘추위처럼 이별 역시 사랑이면에 숨어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든 건 자연스러워야 한다. 억지를 부려 될 일이면 억지를 부려보겠지만 그렇지 않음을 살아온 삶 속에서 수없이 배웠다. 


나는 나에게 말한다.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말은 이별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탈이 나고 나니 무엇을 조심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또 이별을 하게 되더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좋은 마음도 힘든 마음도 영원한 건 없다. 잠시일 뿐이다. 흘려보내야 할 감정을 붙들지 말고 흘러가게 둘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한 움큼만 아파도 될 것을 세웅 큼만큼 아프게 두지 말라는 것이다. 

행복하길 바라는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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