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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징 Dec 27. 2022

안녕 주정뱅이_책리뷰

<<안녕주정뱅이 중 봄밤>>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단점이 더 많으면 그 값은 1보다 작고 그 역이면 1보다 크고."

"그렇지. 모든 인간은 1보다 크거나 작게 되지." 25p

수환과 영경은 깊은 상처로 인해 고쳐지지 못하고 끝내 망가져버렸지만 그러는 순간에도 두 사람은 상대를 위해 각자의 분자를 늘리기 위해 애를 썼다. 엔딩은 초라하고 슬펐다. 누군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어 열심히 살아야 했다고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불행을 감당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에겐 잔인한 말일뿐이다. 그들의 불행과 선택을 나의 잣대에 올려두고 저울질하고 싶진 않았다. 다만 수환과 영경의 인생이 혹독한 겨울 속에 갇혀 끝내 봄이 오지 못하고 끝이 났다는 것에 마음이 아플 뿐이다.  


<<안녕주정뱅이 중 삼인행>>

"자연이든 관계든 오래 지속되어온 것이 파괴되는 데는 번갯불의 찰나만으로도 충분하다" p62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찰나로 인해 이젠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는 사람. 

현재의 관계가 좋아 서로 오래오래 보자고 말을 하기도 했다. 부질없는 것이라는 걸 알게된 순간부터 현재를 즐길 뿐 미래를 말하진 않는다. 말에는 힘이 없기 때문이다.     

 

<<안녕주정뱅이 중 이모>>

가족을 위해 희생을 강요당한 윤경호 이모가 안쓰러웠다. 자유로워지기까지 너무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리고 주어진 2년. 

"오래전 일들이 아무 때나 불쑥불쑥 떠오르곤 했다. 그녀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과거에 깊이 몰입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몽유에서 깨어나듯 현실로 돌아오곳 했는데, 그럴 때면 몹시 화가 났고 풀 길 없는 원한에 사로잡혔다."p89

가족은 이모의 공기를 앗아가 숨 막히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떠나도 과거가 그녀를 붙잡아 편하게 두지 않았다. 혼자지낸 이모가 행복해보이진 않았지만 2년의 시간이 이모에게는 귀했을 거 같다. 이모의 이야기를 들어줄 그녀가 나타나서 좋았다. 이모가 떠나고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는 그녀가 있어 다행이었다.


<<안녕주정뱅이 중 카메라>>

"삶에서 취소할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도 없다. 지나가는 말이든 무심코 한 행동이든, 일단 튀어나온 이상 돌처럼 단단한 필연이 된다."p136

키보드에 있는 Backspace버튼을 누르면 지금까지 썼던 것을 말끔하게 지우고 내가 원하는 지점으로 되돌려준다. 삶에도 Backspace버튼이 있다면 좋겠다. 


<<안녕주정뱅이 중 역광>>

"이를테면 과거라는 건 말입니다."

"무서운 타자이고 이방인입니다. 과거는 말입니다, 어떻게 해도 수정이 안 되는 끔찍한 오탈자, 씻을 수 없는 얼룩,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거할 수 없는 요지부동의 이물질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기억이 그렇게 엄청난 융통성을 발휘하도록 진화했는지 모릅니다. 부동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유동적이게 만들 수 있도록, 육중한 과거를 흔들바위처럼 이리저리 기우뚱기우뚱 흔들 수 있도록, 이것과 저것을 뒤섞거나 숨기거나 심지어 무화시킬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의 기억은 정확성과는 어긋난 방향으로, 그렇다고 완전한 부정확성은 아닌 방향으로 기괴하게 진화해온 것일 수 있어요."p169

상황은 하나인데 남겨진 기억은 각각 다르기도 하다. 기억의 조각을 맞춰보아도 큰 틀만 비슷할 뿐 맞아떨어지지 않기도 하다. 그것은 아마도 기억에 대한 기준이 나를 위해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기억은 객관적이라고 말하지만 주관적일 것이다.   


<<안녕주정뱅이 중 실내화 한켤래>>

"그 만남이 행인지 불행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불행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감지되고 어떤 불행은 지독한 원시의 눈으로만 볼 수 있으며 또 어떤 불행은 어느 각도와 시점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불행은 눈만 돌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지만 결코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p176


<<안녕주정뱅이 중 층>>

하필 그 순간 예연은 인태의 본모습이 의심될 만큼의 낯선 모습을 보았다. 

인태는 평소엔 그런 사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순간 튀어나온 모습 또한 그일 것이다.   


 


안녕 주정뱅이란 제목을 보면 술과 관련된 이야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술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불행에 휩쓸릴 때가 있다. 그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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