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주정뱅이' 라니 제목을 본 순간 이거다 싶었다. 어쩜 이런 제목을 지을 수 있는지 작가의 네이밍 센스에 크~ 소리가 절로 났다. 사실 제목만 보고서는 '안녕? 주정뱅이?'느낌의 똥꼬 발랄한 주정뱅이들의 주절거림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안녕... 주정뱅이...'라는 아련한 느낌으로 읽힌다.
책편식이 심한지라 소설을 읽은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읽은 것이 '가시고기' 였던가 '우행시' 였던가?(와..... 대체 언제 적이야) 지금껏 읽었던 것들이 하나같이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것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소설은 왠지 모르게 무겁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이 책 또한 내게 묵직하고 먹먹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2주 내내 주정뱅이를 가방에 넣어 다니며 이곳저곳에서 꺼내어 읽었다. 햇살이 드는 도서관 창가에서도, 잠들기 전 침대 머리맡에서도. 그치만 뭐니 뭐니 해도 한기가 슬쩍 도는 이자까야 구석에서 촛불 한줄기에 비추어 살짝 취한 상태에서 읽었을 때가 제일 술술 읽혔던 것 같다. 왠지 주정뱅이 이야기를 읽는 주정뱅이 같아서.
딱 봐도 어디에 더 찰떡인지 각이 나온다
주인공인 수환과 영경의 이야기는 사뭇 담담하게 그려지지만 담담하게 읽기 쉽지 않았다. 평생을 몰두한 사업에 실패하고 아내에게 배신당한 뒤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린 남자와, 한 때 교사였지만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고 아이까지 빼앗긴 뒤로 알코올중독자가 되어버린 여자가 만나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이 어찌 담담할 수 있을까.
류머티즘으로 투병하며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남자와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치매를 앓는 여자가 함께 제 발로 요양원에 들어가기까지 어떠한 마음이었을지 감히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보호자이자 유일한 삶의 안식처였기에 두 사람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간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그녀가 술을 마실 수 있게 잠시 요양원 밖으로 내보내주는 것뿐인 남자의 마음은 어떨까. 그 술이 그녀를 더 망가뜨리고 죽음으로 내몬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그녀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픈 그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이해되었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그의 처지가 못내 맘 아팠다.
그녀는 언제든 자살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단검처럼 지니고 살았던 수환이, 그날이 무뎌지지 않도록 밤마다 자살할 시기를 저울질하며 마음을 벼리는 힘으로 하루를 버텼던 그가, 그 단검을 버리고 그럼에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할 만큼 큰 존재였다. 수환 또한 그녀에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텅 빈 자신의 삶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자기 몫의 행운이자 유일한 희망이었으리라.
그녀가 자신의 생과 맞바꿀 술을 마시러 나간 사이에 수환은 그녀를 간절히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녀가 앰뷸런스에 실려 요양원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모든 장례가 다 끝난 후였다. 그녀는 지독한 후유증을 겪은 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의식을 찾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그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했다.
가끔 뭔가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여기저기를 정처 없이 뒤지고 다니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그녀 또한 무의식적으로 그의 부재를 느끼고 있단 걸 안다. 그녀의 인생에서 뭔가 엄청난 것이 증발했다는 사실을 그녀도 느끼고 있으리라 추측할 뿐이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오랜 시간을 그저 엉엉 울기만 하는 그녀의 눈물이 그녀에게 남겨진 깊은 슬픔과 그리움을 희미하게나마 대변해 주었다.
소설은 짧았지만 읽고 난 뒤 여운은 길었다. 그가 홀로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며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녀가 술을 통해 찾으려 혹은 잊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자꾸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려보기도 하고, 마시지 못하는 술을 찔끔찔끔 마시며 작은 회피를 즐기는 요즘의 나에게 그녀를 슬쩍 겹쳐보기도 했다. 그녀도 나처럼 일종의 마취제인 술을 통해 지금의 삶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감각과 감정들을 마비시키려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사실 20대에는 기쁜 일이 있을 때 흥분도를 높이기 위해 즐겁게 짠하고 부딪히며 함께 기울이는 술잔 밖에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따금씩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일이 있을 때 독한 술에 자신을 담그다 못해 절여버리는 어른들을 보며 '무엇이 저리 힘들어 술로 지우려 할까' 연민한 마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의 나에게 있어 술은 더 이상 미친 듯이 부어라 마셔라 할 흥분의 대상이나, 고통에 쩔어 스스로를 독살하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혼자 혹은 둘이서 조용히 음미하며 삶에서 주어지는 잔잔한 즐거움이나 쌉싸름한 고독감을 은근하게 곱씹는 음유의 대상에 가깝다. 어쩌면 삶이 주는 생각과 감정들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가 변한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내가 마시는 술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아직 주정뱅이라 불리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알쓰인(알콜쓰레기의 줄임말로 줄을 마시지 못하는 나 같은 인간을 지칭하는 말) 나의 기준에서 어쨌든 나는 요즘 조금씩 주정뱅이가 되어가는 중인 것 같다. 술 없이 살 수 없는 끔찍한 주정뱅이가 아니라 은은하고 잔잔하게 취함을 즐길 줄 아는 낭만적인 주정뱅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