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항상 생선머리가
제일 맛있다고 하셨다.
젓가락질 몇 번이면 끝나는,
뼈와 가시 사이로 겨우 살점이 붙어 있는
그 조각을 앞에 두고
그게 제일 맛있다며 웃으셨다.
어릴 땐 그냥 믿었다.
엄마는 원래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입맛이 조금 특이하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입맛의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는 언제나 자기 입보다
우리 입이 먼저인 사람이었다.
도톰한 살은 우리 앞으로,
가장 큰 조각은 아버지 앞으로.
그리고 마지막,
생선머리는 당신 앞으로.
엄마가 좋아한 건 생선머리가 아니라
남은 것을 기꺼이 사랑하는 방식이었고,
자기를 늘 마지막에 두는 삶의 습관이었다.
나는 여전히 생선머리를 잘 못 먹는다.
가시가 많아서도,
먹기 불편해서도 아니다.
생선머리를 보면
한 사람의 고단한 삶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직도
생선머리가 맛있다고 웃으신다.
그 웃음소리가
너무 오래된 사랑처럼 들려서,
더 아프게 다가왔다.
말 대신 밥상 위에 놓였던,
그 오래된 진심.
그건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