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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영 Oct 14. 2021

교육연극의 정의찾기

교육연극의 개념, 맥락, 방법론에 대한 안내서 1

교육연극이란 무엇인가?

교육학, 연극학 처럼 교육연극이라는 학문을 가리키는 것인가?

과정드라마, 포럼연극, 참여연극 등의 방법론, 양식을 설명하는 것인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가?

이 모든 것이 혼재되어 있는 듯 하다. 


일반적으로 교육연극은 교실에서 활용하는 연극방법론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2020년, 교사들에게 연극수업을 할 수 있는 길잡이 용 책을 쓰는 과정에 참여했었다. 교사들 뿐 아니라, 교육연극에 대한 안내와 정보를 주는데 적절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출판사는 나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나의 저서 < 과정중심연극으로서의 교육연극 > 을 <과정중심연극으로서의 교실연극 >으로 표기하였다. 그렇게 여러번의 미팅에서 언급했음에도 저자에게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고, 너무도 당연히 교실연극이 맞을 것이라는 추측하에 '교실연극'이라고 표기한 것이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교육연극을 교실에서 활용하는 연극활동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씁쓸한 경험이었다. 


교육연극에 대한 속시원한 정의를 찾기란 쉽진 않다. 그러나 다음의 정의로부터 출발해보고자 한다. 


교육연극은 인간의 삶에 적용되는 다양한 드라마(drama)와 연극공연(theatre)의 접근방법을 구체적으로 규명해내려는 시도(Landy, 1982)이다. 


이 정의는 교육연극학자 랜디(Robert J. Landy)가 그의 저서 교육연극지침서(Handbook of Educational Drama and Theatre)에서 밝히고 있는 내용이다. 여기서 핵심은 "인간의 삶에 적용되는"일 것이다. 우리가 대체로 연극예술을 생각할 때, 무대예술로서의 멋진 작품, 나의 일상과는 떨어져있는 오락거리나 구경거리쯤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로 연극연수에서 참여자들이 내게 제일 많이 하는 말들이, "대사를 시킬까봐 무서워요", 혹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공연대본 좀 주세요" 등이다. 연극을 곧 공연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정의를 살펴보자. 


연극(theatre)은 사람들이 다른 시간대와 공간에서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상상하고 행동할 때 공유되는 직접 경험이다. 이러한 정의는 모든 형태의 창의적이고 모방적인 행동을 포괄한다. 연극은 (주로 나중에 벌어질 사건이나 나누게 될 대화를 예행 연습하는 형태로 진행되며 본능적으로 그 활용방법이 내재되어 있는) 어린이들의 자유롭고 즉각적인 놀이에서부터 관객을 위해 배우들이 상연하는 형식적인 극 경험을 모두 포괄한다. (Neelands, 1990) 


나는 이 정의에서의 방점을, "다른 시간대와 공간에서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상상하고 행동할 때 공유되는 직접경험"에 두고싶다. 그리고 그 직접경험에는 어린이들의 놀이와 함께, 관객을 앞에두고 공연하는 배우들의 공연도 모두 포함된다. 놀이를 통해 체험하고 경험하는 순간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공연을 보는 행위조차 모두 직접 경험이라는 것이 아닐까?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동의한다. 직접 체험해보는 행위(drama)와 구경하며 감동을 받고 영향을 주고받는 공연행위(theatre)가 모두 연극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연극의 정의로부터 교육연극에 대한 개념을 찾아가보면 어떨까? 


융합학문으로서의 교육연극


교육연극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 볼 때, 교육연극이란 분명, 연극이 가지는 "인간의 삶에 적용되는", "다른 시간대와 공간에서의 직접경험"을 함께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리라.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교육연극은 교육철학과 연극의 역사 속에서 형성되어진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성격을 가진 학문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교육연극의 복합성에 대해서 교육연극학자 리차드 코트니Richard Courtney는 특히 4가지의 영역이 교육연극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정리한다. 



루소의 놀이로 부터 배우기(Learning through play), 존 듀이가 말한 행위로부터 배우기(Learning by doing), 콜드웰 쿡의 극적행위로부터 배우기(Learning by dramatic doing), 연극공연으로부터 배우기(Learning through theatre)이 교육연극을 형성한 4가지 영역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린이들의 자연발생적인 놀이, 하나의 경험이 되는 행위들,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해보는 극적행위들, 그리고 공연과 극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수많은 연극공연들이 모두 교육연극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쉽게 이야기하는 학교연극, 교실연극의 범위를 이미 완전히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교육연극을 교실연극이라 인식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으로 교육연극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역사적 맥락 


교육연극이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학문이라는 것은 학자들에 따라 교육연극을 지칭하는 용어들이 다양하다는 것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창의적인 드라마creative drama', 'DIEdrama in education', 'TIEtheatre in education', '성장과 발달을 위한 드라마developmetal drama', '과정드라마prcess drama'등으로 지칭되어 왔으며, 20세기 초부터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영어권 국가를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물론 연극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으며, 연극은 시대적 맥락 속에서 교육의 기능을 수행해왔었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는 교육연극이 구체적인 학문으로 자리잡게 된 배경과 맥락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20세기 초인 1903년, 미국의 사회복지사였던 앨리스 미니 허츠(Alice Minnie Hers)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어린이교육극단(The children's Educational Theatre)을 설립했다. 뉴욕시 교육연맹의 지원을 받았으며, 뉴욕시의 러시아, 폴란드계 등의 이주민 정착지에 만들어졌다. 뉴욕 빈민지역의 이주민들, 특히 생계형 맞벌이 자녀들을 위한 영어교육, 공동체 교육 및 건강한 시민으로의 수용이라는 목표 속에서 활동이 이루어진 점이 흥미롭다. 세익스피어 작품을 중심으로 한 작품들을 올렸으며, 유흥과 오락으로서의 연극을 넘어서는 가족 및 사회 구성원들간의 만남과 교육을 실천했다. 이처럼 연극만들기를 통해, 개인의 창의성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을 다져나가나는 전통이 초창기 활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활동은 1930년경, 위니프레드 워드(Winifred Ward)에 의해 활짝 꽃을 피우게 된다. 연극만들기를 통한 체험과 즐거움에 초점을 둔 창의적인 드라마 방법론과 개념이 정립되어 미국의 학교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창의적인 드라마creative drama'의 개념은 이후 1978년 미국아동극협회(Children's Theatre Association of America, CTAA)의 정의로 정리되어, 현재 우리가 '연극놀이'(이 개념에 대해서는 이후 5장에서 보다 상세히 서술할 것이다)라고 지칭하는 개념의 기반이 되었다. 


즉흥적이며 비공개적이고 과정이 중시되는 드라마의 한 형태로서 전문리더의 지도하에 참여자들은 인간의 경험을 반영시켜보고 실제로 체험하며, 그 이상의 것들을 상상하게 된다. 창의적인 드라마의 주요목적은 전문배우를 훈련시키는 것이라기 보다는 참여자의 인성발달을 증진시키고 체험을 통한 학습을 촉진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연극놀이의 시작이 연극만들기의 전통 속에서 개인의 창의성과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환경 속에서 발전되어왔다면, 영국에서의 교육연극의 흐름은 어떻게 형성되어왔을까?

영국에서는 20세기 초부터 학교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낭송하는 방식 등이 익숙한 풍경이었다. 이러한 풍경들은 교사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1921년 영국의 공식문서에서 Drama in Education이 언급되면서 DIE는 교실에서의 드라마활동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도로시 헤스코트Dorothy Heathcote에 의해서 그 방법론과 개념이 정립, 확대되었다. 특히 헤스코트는 드라마를 통한 학습이 교과과정에만 한정되기 보다는 인간의 삶 전체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러한 주장은 드라마 과정이 인간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이끌어내었다. 철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문제들이 제기되며, 드라마 활동에 대한 융합적인 탐구가 본격적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교육연극이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잡게 된 데에는 이처럼 헤스코트의 실천과 헌신이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개빈 볼튼Gavin Bolton은 1998년에 그의 저서, Acting in classroom drama에서 교실에서 행해지는 드라마활동전반을 '교실드라마classroom drama'라는 용어로 정리하였다. 볼튼은 교실에서의 드라마활동을 학습의 관점을 넘어서는 교실에서의 연기행위전반에 대한 개념으로 정리해내었다. 

교실에서의 드라마활동과 함께 영국을 중심으로 실험되고 확산된 또 하나의 교육연극운동이 1960년대 시작되었다. 1965년 영국의 중소도시인 코벤트리시에서는 지역의 학교들을 위한 교육적인 연극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기획초기부터 지역정부와 예술가, 교사들이 함께모여,  연극과 극장이 학생들의 경험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지역의 예술가들과 학생들이 만나 공연전반에 대한 과정, 극장방문에 대한 체험을 함과 동시에, 학생들의 성장과 관련된 여러가지 주제들, 인종문제와 사회적인 갈등의 문제들까지 공연을 통해 접근하고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러한 교육연극운동은 교실에서 한명의 교사에 의해서 진행되는 드라마활동뿐만 아니라, 연극이라는 3차원적이고 입체적인 경험을 통해 사회적인 소통과 인식의 문제를 다루어내는 영역으로 교육연극의 개념을 확장시키게 되었다. 이 개념은 TIE: Theatre in Education이라는 용어로 정리되었다. 또한 배우이면서 동시에 교사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는 actor-teacher의 개념, 관객이 아닌 참여자라는 개념이 이 시기에 모두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통해서, 교육연극의 개념은 미국에서 형성된 연극만들기와 즉흥을 중심으로 한 창의적인 드라마creative drama와 영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교실드라마classroom drama와 TIE운동이 모두 수용되어 발전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연극을 교육적으로 연계해온 움직임은 전세계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연극이라는 하나의 학문으로 발돋움을 하게 된 데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그 실체를 발견하게 된다. 


지금까지 정리한 역사적 맥락과 배경, 그리고 필자의 경험을 종합하여 교육연극의 정의를 정리해보겠다.

첫째, 교육연극은 놀이이론, 극적행위에 대한 개념, 존 듀이의 경험으로서의 예술, 그리고 수천년을 이어온 연극공연의 전통과 소통방식이 융합되어 형성되고 있는(이 부분이 중요하다. 교육연극의 개념은 완성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것!) 학문이자, 예술장르이다. 

둘째, 교육연극은 연극만들기(playmaking)의 전통과 학습과 매체로서의 연극활동을 모두 수용하며 발전해왔다.

셋째, 교육연극에서의 '교육'은 참여자들에게 연극에 대해서, 연극을 통해서, 연극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지평을 모두 포함한다. 그래서 매우 구체적인 프로그램의 형태를  띠기도 하고, 장기간의 프로젝트의 성격을 가지고 진행되기도 하며, 매우 미학적인 미적체험의 현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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