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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영 Oct 30. 2019

소리와 정서로 다가오는
'보이야르의 노래'

최지영의 공연읽기 4

'보이야르의 노래'


이 작품은 리아와 쿠니의 이야기다.

리아는 방글라데시의 한 마을에 살고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로힝야사람들이 마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리아가 좋아하는 망고나무가 베어지고, 거기에 로힝야 난민촌이 세워졌다. 그러니 리아는 로힝야 사람들이 싫을 수 밖에...

그런데 그런 미움에도 불구하고 자기 또래의 새 친구에 대한 궁금함과 호기심을 누르지는 못하지~

슬그머니 가지고 놀던 장난감 공을 던져본다. 투욱 통~통~통~  실제로 미워서 조준해서 맞춘 것이지...

그런데 그건 공놀이가 된다.  던지고 맞추고, 떨어진 공을 찾고, 숨기고 뺏고  뺏기고~

어느 순간 그들은 잡기놀이를 하는 친구가 되어 있었다

리아와 쿠시는 함께 피리를 분다. 먼저 쿠시가 불면 리아가 따라 분다. 그러다가 둘의 소리는 어여쁜 합주가 되간다. 그 소리가 이뻐서 계속 듣고 싶다.

이 작품은 '소리음악극'이라는 또하나의 부제를 달고 있다.

무대 한 구석에 두명의 악사가 자리하고 있다.

장고와 북, 여러종류의 피리들, 실로폰들이 노출되어 있고, 악사들은 끊임없이 소리를 낸다.

두 친구의  피리소리는 악사들의 소리와 합해져 하나의 연주처럼 우리들의 정서를 끊임없이 몰입시킨다.

연극이 시작하면서부터 악사들의 소리는 시작되고, 어떨 때는 음악처럼, 어떨때는 소리의 묘사처럼, 어떨때는 효과처럼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다가오며 연극과 함께 공존한다.

음악과 소리를 통한 스토리텔링이라고 할까? 거기에 하나를 더 붙이면 리아와 쿠시의 밀고 땡기는 리듬?


'보이야르의 노래'가 반가운 것은

대부분의 아동극, 아니 대부분의 연극공연에서의  표출과 표현이 언어와 사건, 맥락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데 반해(솔직히 모든 연극들은 그 나름대로의 찬란하고 새로운 수식어구로 자신들의 공연을 홍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와 스토리에서 벗어나는 연극을 살펴보기는 그렇게 많지 않다)와 음악, 두 친구 사이의 정서의 교류를 통해 극을 만들어나가려는 도전과 영감이 보이기 때문이다.

분명 이 이야기는 '난민'이라고 하는 매우 민감한, 그리고 '이슬람'이라고는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녹록치 않은 작품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두 친구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그 정서를 오롯이 쫒아가고 있다. 이러한 정서를 그대로 표현하는 장치들이 있다. 특히 마치 조그마한 연못같은 수조?를 놓고 리아와 쿠시가 끊임없이 빨대로 물과 소리를 불어대며 둘의 감정을 소통하는 장면들이 있다. 둘은 각각의 빨대로 각각이 놀이를 하면서 몰입하기도 하고, 어느샌가 서로의 소리에 반응하기도 하고, 그래서 둘의 반응이 하나의 앙상블이 되어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장치(이자 상징적인 무대공간)들을 통한 소통이 재미있다.


이 공연은 작년, 광주 예술의 전당의 '참여형 공연 창작지원사업'을 모태로 하여 출발했다. 필자 역시 그 사업에 팀티처로 참여했기에, 이 작품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지켜볼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그 당시는 그야말로 두명의 뮤지션이 로힝야 난민에 대한 아픔을 음악적 정서로 전달하고자 한 원석같은 컨셉만이 존재했었다. 그 과정에서 리아와 쿠시라는 인물이 탄생하며 서사가 정리되었고, 그 서사는 소리와 음악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전달되고 표현하는 것을 모토로 삼는 작품이 형성되기 시작되었다.

이러한 형성의 과정을 알고 있기에, 이전의 공연보다 솔직히 리아의 대사량이 많아진 점이 좀 아쉽다.


- 리아가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한 소리를 통한 상상의 이끌어냄,

- 연극놀이와 여러가지 소품을 활용한 리아가족에 대한 소개

- 그리고 리아와 쿠시와의 무대에서의 주고받는 움직임들을 통한 리듬들~

- 무대공간에서 리아와 쿠시의 집상자(여러가지 소품들이 장착되어 있는)들을 활용한 역동의 창출 등


그야말로 좀 더 소리와 정서에 대한 몰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요소들간의 연계를 강화시키는 것이 좋지 않을까?

드라마와 플롯이라는 강박이 아닌, 플롯을 뛰어넘어서서 소리와 정서에 몰입하는 그래서 그러한 몰입에서 자연스럽게 드라마가 뽀글뽀글 뿜어져 나오는 차별화된 형식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연극의 형식과 내용은 불가분의 관계로 엮여질 수 밖에 없다.

보이야르의 노래는 소리와 음악, 정서와 리듬, 공간과 움직임이라는 요소를 통한 형식적 몰입으로부터 표출되는 드라마라는 나름 새로운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 생각해 본다.


우리 안에 있는 주제전달이라는 강박에서 확연히 자유로운 , 그래서 좀 더 그 주제의 울림이 강화될 수 있는 그러한 아름다운 작품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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