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미술관에 3월 30일까지만 하는 전시가 있었다.
김성환 작가의 '하와이' 라는 소재를 시작으로 여러 다양한 방법으로 역사와 기억, 구조, 심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시립미술관까지는 차로 1시간 12분이 걸렸다.
감기에 걸려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너무 가고 싶었기 때문에
운전을 택했다.
오후 12시 전후였는데 차가 많았다.
다들 출근을 했을텐데
언제나 평일 서울은 차가 많다.
왜일까?
가는 길마다 정체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지루함을 달래기위해
나는 여행을 하는 중이다. 라고 되뇌이며
기차 밖 풍경을 보듯 도시를 바라 보았다.
삼전동 쯤이었을까?
낡은 건물들과 새로운 건물들이 섞여 있었고
잠실, 석촌 쭉쭉 꽉차면
이곳의 땅들이 더 개발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이 침습할 때마다
나쁜 공기를 내쉬듯 한숨을 쉬고
주인에게 혼난 개마냥 머리를 털게 된다.
지겹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드니
아파트들이 쭉쭉 하늘을 향해 뻗어있었고
아파트 앞에서 즐비해있는 1층 음식점들을 제외하곤
건물 전체를 쓰고 있는 교회와 병원들이 눈에 띄었다.
교회와 병원은 영리가 금지되어 있는 업종인데 어떻게 건물 전체를 쓰고 있는 것일까?
참 아이러니다.
사람들이 저 아파트를 사려고 뼈빠지게 일하다가
몸과 마음이 아파
번돈을 저기에 다 갖다 쓰나보다.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포스트잇에 적었다. 지루하지 않고 참 좋았다)
세상 돌아가는 원리는 이제는 참 맥빠질만큼 진부하다.
아...또 돈생각이다. 이제 그만.
한강이 보여서 빌리 아일리시의 노래를 틀었다.
밤드라이브에는 그녀의 노래가 참 좋았는데
낮에는 어떨까 싶어 틀었지만
금방 시내에 입성했고
어마무시한 교통지옥을 뚫느라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없다. 틀어져 있기는 했었나?
우여곡절 끝에 미술관에 도착했다.
3개의 ROOM에 김성환의 전시가 이어졌다.
하와이의 역사에서 시작해서 우리나라의 역사까지.
청출어람의 뜻에 질문을 제기했는데
왠지 공감이 되어 적어놨다.
'쪽빛을 빼앗긴 풀은 억울하지 않을까'
게이조의 여름나날이라는 2007년에 찍은 1937년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미키 반데 보르트라는 작가인데
(찾아 보니 네덜란드인인 것 같고 1972년 생인데 상기 영상을 찍은 4년 후인 2011년 사망했다. 왜그렇게 일찍 죽었을까. )
그녀는 영상에서 춤도 추고 걷고 자신의 손가락을 그린다. 퍼포먼스, 나레이션, 영상까지.
인상적인 어구들을 시처럼 나열해보았다.
'내게는 다 낭만적으로만 보인다
'나는 죄를 졌다.
'많이 누렸고 이룬 것은 적다
'이러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저 자연에 살고 싶었던 것 뿐이다.
대충 이런 의미의 문장들이었던 것 같다.
내게는 꽤나 개연성이 있다.
그녀는 자살 했을까?
그렇게 자연으로 돌아가고 생을 초월했을까?
돌아가는 길,
네비게이션은 올림픽대로, 경부고속도로, 동부 간선도로 등 큰길로만 안내하였다.
괜히 따르기가 싫어 나는 신사역으로 들어갔다.
차는 훨씬 적었다.
혹시 내비게이션도 강남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이제는 망상적인 생각마저 든다. 다시 머리를 턴다.
그런 생각도 잠시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물론 사람마다 다르다)
강남을지병원의 은색 건축물은 본디의 천장보다 쓸데없이 높게
솟구쳐있다.
나도 모르게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을 쳐들었다.
가끔 나도 내 자신이 이해가 안간다.
왜 그런거니? 제발 쓸데없는데 신경 좀 끄자.
이상의 날개를 오디오북으로 틀었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내가 제대로 들었다면 날개의 내용은 (띄엄띄엄 들었고 과거 읽은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용한 몽상가인 주인공은 몸을 팔아 먹고 사는 아내에게
부끄럽고 숨겨진 남편으로 천대와 무시를 당하며
빈대처럼 지내고 있다.
빈대처럼 있어야할 그가 낮에 외출을 하기 시작하자
아내는 그에게 감기약이라 속이고 수면제를 먹이고
모함을 하여 사람들의 경멸을 받게 만든다.
그는 아내를 사랑했고
아내가 자랑스러웠고
아내가 자신에게 왜 수면제를 먹였는지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백화점 옥상으로 올라가
자기의 과거 날개의 흔적을 바라보며
날아보자 꾸나 외친다. 그렇게 그는 날았을까?
경제적, 현실적 능력이 없는
몽상가이자 한량인 그는
기생충같은 존재다.
(주인공이 여자 였다면 바로 밟혀 버려졌을 것 같다. 그러면 서사가 너무 뻔하니 소설이 주목받지 못했으리라)
기생충같은 취급에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주인공은 천재였고 예술가였고 제일 어여뿐 아내를 가진 존엄한 인간이었다.
빈대에 물리는 것만이 유일한 고통이었다.
그렇게 그는 빈대가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자신의 날개로 옥상에서 뛰어 내린다.
남일 같지가 않다.
나는 지금 일을 하고 있지않다.
규칙적인 생활도 계획도 없다
빈대는 못보았지만 좀벌레를 만났다.
진드기에 물려도 보았다.
알 수 없는 피부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요새 다시 가라앉았다. 이유는 찾지 못했다)
정말이지 무용하고
영향력 없고
오로지 꿈만 꿀 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삶이다.
그런데, 날개의 주인공처럼
방이 좋다.
전경린은 ' 자기만의 집'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썼다.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던
버지니아 울프처럼
집안의 천사를 죽이라고 하고는
자신은 코트 주머니에 돌을 넣고 물에 빠져 죽은 그녀처럼
나는 집안의 천사를 죽였고
자기만의 집에서
몽상하고 있다.
나의 죽음이 어떻게 찾아올지
두렵고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