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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대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by 바리데기

어린 시절부터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알았다.

아니 어쩌면 누군가도 그런 생각을 했을 테지만 입으로 뱉지 않았다.

"피타고라스를 배워서 어디에 쓰죠?"

"숙제를 한다고 동의한 적이 없는데 왜 혼나는 거죠?"

"공부를 못하는 게 잘못인가요? 왜 틀린 갯수대로 때리는거죠?"

"떠든 사람 이름을 반장에게 적게 하는 것은 비인간적이에요. 아이들은 어디서 말하고 뛰어놀죠?"

등등 보통 앞부분을 질문으로 하고 뒷부분은 속으로 먹었지만

뒷부분을 말하기도 전에

혼이 났다.


분이 났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어떻게 사람을 용서하는지

사랑이란 대체 무엇인지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누구도 물어서는 안되었다.

그렇게 너무 어려운 질문들을 피해

분주한 일상에서

일단 닥친 숙제를 하고

시험을 준비하고

학교에 들어가고

먹고 살면서

그렇게 계속 미루고 미뤄

영원히 살 것처럼

그 질문을 해결할 시간이

언젠가 여유있게 올 것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몸이 무너졌다.

일상생활이 되지 않았다.

머리가 깨지고

눈이 빠질듯한 두통이 지속되었다.

먹는 족족 토했다.

잠을 잘 수 있을리 만무했다.


모든 것을 스톱시켰다.

아니, 의식을 잃듯 뇌가 정지해버렸다.

나의 어떤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잠자는 법, 먹는 법, 쉬는 법, 노는 법을 기억해내야 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내가 나답게 사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아픈 나를 비난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아니, 나가달라면 나갔고 떠나가는 그들을 잡지 않았다.


조용한 곳에서

내 마음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잃어버린 그 목소리를 찾아야만 했다.

책을 읽었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부터

한강의 노랑무늬영원까지.

문학 속에 내가 있었다.

내 마음의 소리들을 언어로 바꾸어 오랫동안 나를 기다려오고 있었다.

여깄었구나. 안녕 나야.


음악을 들었다.

마음을 울리는 음악들이

살갗을 간지럽히고 숨을 쉬게 했다.

임윤찬의 리스트 초절기교 연습곡부터

Hania Rani의 F major까지.


취향이란 게 있었다.

내 안에 열정적인

한번도 자유롭지 못했던 아이가

숨죽여 울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깨어났다.


두려웠고 두렵다.

무엇이 두려운지 모른다.

공포란 자고로 감정기억이어서

수없이 많은 trauma들이 편도에 발작 버튼을 만든다.


날 것의 나로 어떻게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는지

사회적 페르소나를 쓰고

어떻게 말하고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떻게 움직여야할지

혼란스럽다.


어른의 옷을 입고

어른의 기억을 가지고

아이의 본성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알려준 적이 없다.


나는 분이 난다.

나답게 살고자 하는데

그것이 왜 두려운지

비판의식없이 내재화된 자기검열과

촘촘해져가는 관용없는 관습과 규범들

안팍으로 서슬퍼런 칼날이 나를 겨누는 것만 같다.


아마도 공황장애가 폭발하는 이유일 것이다.

불안 세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유일 것이다.


아무래도 우아하고 세련되게는 어려울 것 같다.

그 어떤 문학에서도 진실은 우아하고 세련된 법이 없었다.


눈을 감고 내면을 그리기 시작한다.

나는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로 살아갈 것이다.

그것말고는 살 방법이 없다.

살기 위해 하는 모든 일은 숭고하다.


자살한 사람들의 괴적을 쫒는다.

미친 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그들이 자신을 찾고자 갔었던 그곳부터 시작한다.


힘겨운 어른과 아이, 우리는 함께 길 위에 쓰러졌고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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