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살아질 때가 있다.
자신마저 속여야할 때가 있다.
따뜻한 말과 희망이 속삭임이
위로가 될 때가 있다.
세상의 빛만을 바라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어느 날 다가온다.
빛이 무서워지고
가지런한 말들은 울부짖음이 되고
두 발이 아닌 네 발로도 걸을 수 없을 때가.
어둠 속에서만 보이고 들리는 것들이 있다.
법과 논리의 밝은 휘장 덕에
소시민은 알 수 없는 숨어있는 덫들은
보여줄 수도 보이지도 않아
외로움과 자기불신이 짙어질 때.
어두움은 이 모든 사슬을 단숨에 끊는다.
그곳에서만 직관되는 진실이 있다.
절망이 바닥을 찍고
울부짖음이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고
미세한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을 때
차가운 바닥에 맨몸으로 누워있는 자신을 보게 되는 날부터
타나토스와 에로스의 욕망
그 무엇도 소진되어 버린 텅빈 어느 날부터
다시 시간은 흐른다.
그렇게 켜켜이 의심으로 봉인되어 버린
몸 속 곳곳의 기억과 감정들이
온 몸의 신경망을 타고 세포를 흔들기 시작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 제련된 고통은
깊은 땅속 마그마처럼 온도와 압력을 높이다가
지표를 뚫고 자신을 세상에 뿜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