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의 띠의 시작은 어디이고 끝은 어디일까.
그 시작과 끝은 자름으로 지정해야 한다.
시작과 끝은 없으므로
시작과 끝을 선택해야한다.
죄책감과 피해의식의 고리란 그러하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순환고리의 시작이 분명 있었을 테지만
어느 새 전생처럼 아득하고
미래를 아는 것처럼 현재와 닿아있다.
선으로 시작된 일이라 해도
악과 만나면 악이 되고 선으로 용서했다가 악으로 앙갚음한다.
미움과 배신감이 켜켜히 쌓여 숯불이 되고
죄책감과 열등감의 땔깜을 활활 태운다.
그렇게 숯은 재가 되고
땔감도 재가 된다.
그들은 같아진다.
양파의 본질이 껍질인 것처럼
악 또한 벗겨도 벗겨도
조금 크기가 작고 하얀 속살이 나올 뿐
그 또한 주춤하는 사이 푸르고 송송한 흰 곰팡이꽃을 피어낸다.
어디까지 벗기고 잘라낼지 경계지어야한다.
춥고 더운 모든 계절을 지고지순하게 살아낸다해도
당신이 검은지 축축한지 따뜻한지 악취가 나는지 나는 모를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당신이고 그 어떤 것도 당신이 아닐 것이다.
색맹처럼 빨강과 초록을 구별하지 못했던 나를 기억한다.
지금은 이리도 선명히 보이는 그 색깔들을
빨강을 초록이라 했고 초록을 빨강이라 했다.
악의없는 그림자에 소스라쳤고 눈물로 애원했다.
포악한 짐승의 포효를 이해했고 사랑했다.
그 모든 것들은 느리고 천천히 정확하고 계획대로 웃음지었다.
가만히 과거의 나를 바라본다.
우리는 서로에게 희미한 미소를 데칼코마니처럼 찍어낸다.
왼쪽에는 초록이 오른쪽에는 빨강이 찍힌
크리스마스 트리같은
나무의 붉은 피가
검붉게 산화되고 끈적하게 굳더니
마침내 숨겨왔던 날카로운 쇠칼을 잉태하여
단번에 지층을 뚫고 뿌리내린다.
목말렀던 온 살이
진흙에 철썩 들러붙어
게걸스럽게 엉긴 물을 빨아댄다.
다시는 목마를 수는 없는 것처럼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