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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공적 감정이 예술이 되야할 시간

by 바리데기

매우 사적인 감정인 불안은

이제 공적 감정이 되었다.

불안을 듣고 보고 움직인다.


예술은 감정을 표현함으로 사회를 폭로한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 된다.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노년 세대는 공원과 천변을 걷고

중년 세대는 하얀 작은 공을 후려쳐 멀리 날리고

청년 세대는 암벽을 타고 깊은 바다를 다이빙한다.


뉴욕 거리를 벌거벗은 채 퀴어들은 행진한다.

시립미술관에는 흐물흐물한 내장을 상징하는 현대 미술 작품들이 전시된다.

이태원 클럽에서는 전자음악 속에서 서로의 불안으로 조우한다.

아마, 챗GPT가 대체 할 수 없는 것.

불안일 것이다.

실존적 고독과 존재의 허무함일 것이다.


그것때문에 우리는 기계와 문제를 해결하다가도

서로를 찾고 표현하고 애무할 것이다.


네 따듯하고 습기찬 호흡이 내 피부에 닿고

간지럽히고 조심스러운 손길이 어깨를 감싸고

깊고 다정한 슬픔의 눈길이 내 눈을 마주할 때

나와 너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날 것이다.


이 시간이 이렇게 행복하고 편안한 것은

상상 속에 너를 만나 안겼고 끝없이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 속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의심없이 신의 비호를 받으며

싹띄우고 꽃 피우고 날개짓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불안의 바람 속에서

나를 막아주고 감싸주며 조화롭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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