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아버지

23년다닌 교회가 알고보니 이단

by 시온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유명하다는 신경정신과 한의원이었다.

병원은 내가 알고 있던 한의원과는 달랐다. 각종 장비들이 놓여 있었고, 상담실은 따로 마련되어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세련되고 현대적인 분위기였다. 대기실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 있다가, 바쁘게 움직이는 안내데스크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바쁘게 일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저들과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고 있었다. 꿈도 있었고, 계획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낫지 않는 병에 매달린 채, 늘 멍한 정신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그 사실이 서글펐다.


잠시 뒤 직원이 나를 불렀다. 머리에 젤 같은 것을 잔뜩 바르고, 전기선이 여러 개 달린 모자 같은 장비를 씌웠다. 자율신경 검사였다. 한동안 말없이 검사를 받았고, 지난주 가정의학과에서 이미 피를 뽑았음에도 또다시 채혈을 했다.


이후 만난 한의사는 검사 결과를 보며 말했다. 내 자율신경이 망가졌고, 가슴과 얼굴 쪽으로 열이 몰려 있다고 했다. 나는 “누워보라”는 말에 눕고, 배를 눌림 당하고, 다시 앉으라는 지시에 따르기만 했다. 자율신경과 관련된 병을 설명하는 화면이 눈앞에 지나갔지만 머릿속에 남는 것은 거의 없었다.


“이제 나가서 상담 실장님과 이야기하세요.”


상담실에서 만난 상담사는 두꺼운 파일을 내 앞에 펼쳐놓고 약재와 비용, 기간을 설명했다. 자율신경 검사는 한 달에 한 번 10만 원, 한약 한 달치 65만 원, 일주일에 한 번 3만 5천 원 이상의 약침과 교정 추나. 이곳이 병원인지, 공장인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기계처럼 돌아가는 시스템 같았다. 숨이 턱 막혔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상담사의 입술만 보다가, 지금 당장 집에 가서 숨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조금 생각해 볼게요.”


그렇게 말하고 한의원을 나왔다.

집에 돌아와 고민에 빠졌다.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어디가 아프다’고 말해준 곳은, 그 한의원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


다음 날, 기관에서 한 통의 메일이 왔다. 한 달의 유예 기간이 끝났으니 결정을 하라는 내용이었다. 결정할 게 있나.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나는 포기한다는 문서에 서명했고, 그렇게 오랜 꿈 하나가 조용히 사라졌다.

그 무렵 다시 배탈이 시작되었다. 일주일 동안 거의 먹지 못했고, 수액으로 버텼다. 울면서 바나나를 삼키던 어느 날, 나는 또다시 인터넷을 붙잡았다. ‘자율신경 이명 병원’, ‘공황장애 치료’. 그러다 이명을 잘 고친다는 한의원 광고를 보게 되었고, 다음 병원은 그곳으로 예약했다.


그 한의원은 이전보다 훨씬 아담했고, 기계적인 느낌은 덜했다. 의사는 손바닥 위에 재료를 하나씩 올려놓고 진동이나 파동이 맞는지를 느낀다며 약재를 고르는 방식으로 진료했다. 퍼포먼스 같다는 의심도 들었지만, 이전보다 약값이 조금 저렴했고 무엇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치료를 시작했다.


한약은 하루 세 번, 침과 약침은 일주일에 한 번. 한 달 약값으로만 약 70만 원이 나갔다. 다행히 가장 먼저 호전된 것은 배탈이었다. 조금만 먹어도 탈이 나던 배가 점점 안정되었고, 먹을 수 있는 양이 늘자 기운도 조금씩 돌아왔다. 나는 운동을 시작했다. 아침을 먹고 나면 최소 5천 보, 많게는 만 보까지 걸었다.


그리고 다시, 조금씩 예배에 나가기 시작했다. 육신의 아픔과 함께 치유해야 할 것은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내가 욕심대로 살며 예배를 소홀히 한 건 아닐까,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을 중심에 두지 못한 건 아닐까. 회개가 들었다. 나는 이전에도 그렇게 신앙으로 고난을 버텨왔다. 25년의 신앙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설교를 듣는 동안 자꾸 헛구역질이 났다.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늘 듣던 설교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처럼 느껴졌다. 정확히 무엇이 잘못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성경 그대로의 말씀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계속 기도했다.


제발 오늘은 목사님이 돈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게 해달라고..


그러나 교회에 갈수록 헛구역질은 심해졌다. 몸이 예민해진 탓일 거라 스스로를 설득하며 오히려 더 열심히 기도했다. 몇 달의 고민 끝에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이 교회를 더 이상 다닐 수 없을 것 같다고. 엄마는 나의 유일한 신앙 동지였기에 나를 나무라며 교회를 떠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설교를 들을 수 없었다.


오히려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서 성경을 더 깊이 읽기 시작했다. 이해하려 애썼고,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영혼은 또다시 의지할 곳 없는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


6개월쯤 지나자 두근거림은 사라졌다. 그러나 가장 힘들었던 공황장애와 이명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처음엔 몸이 조금 나아지니 이 병들도 곧 사라질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치료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공황도, 이명도 더 이상 좋아지지 않았다. 가끔은 이 삶이 너무 괴로워 울기도 했다.

그후 1년 동안 이 병에 매달렸고 치료에 전념했지만, 이명은 여전히 들렸고 공황은 조금 익숙해졌을 뿐 여전히 힘들었다.


그사이 나는 독립을 했다. 이렇게 아픈데 집을 나와 살 수 있을까 수없이 고민했지만, 언니와 엄마의 도움으로 작은 자취방을 구했다. 이사 후 몇 달은 무리한 탓에 공황이 세게 오기도 했지만, 나는 계속 걷고 사람들이 붐비는 곳으로 나갔고, 지하철을 타며 한 시간 거리 이동에도 도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떠나온 교회가 방송에 나왔다.

그 교회는 이단이었다.

25년을 다닌 교회가 이단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마치 인생을 도둑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내가 느꼈던 그 헛구역질은 정당한 신호였던 걸까. 왜 하나님은 이렇게 힘든 시기에 신앙마저 무너뜨리셨을까. 지금이 아니어도 됐잖아. 그럼 나는 구원받은 건가?


이것이 벌이라면 너무 길고,

시험이라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살아 있다.

믿음이 남아서가 아니라,

아직 끝났다고 말할 수 없어서.


어쩌면 신앙이란

답을 얻는 일이 아니라

끝까지 질문을 버리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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