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길고양이를 닮은 펠트 카드지갑
어둑어둑해진 저녁, 언니와 퇴근하는 길이었다. 언덕길 옆에 위치한 건물 주차장에 번쩍이는 두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법 봄기운이 느껴지는 밤이었지만 여전히 날은 추웠다. 얼굴에 검은색 양쪽 얼룩을 두르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가 포대자루 위에 식빵을 굽고 있었다. 순간 너무 귀여운 나머지 언니와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 녀석을 잠시 구경했다. 노곤노곤함에 잠이 오는지 눈을 연신 감았다 뜨고 있었다. 밤이라 그런지 녀석의 두 동공은 커져있었는데 그 모습을 본 우리 자매는 오늘 밤도 잘 지내길 바란다는 인사말과 건넸다.
2019년, 우리에게 반달이가 함께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공방 앞을 걸어가던 고양이들이 신기해서 언제쯤 우리 앞을 지나갈까 기다리기도 했던 것 같다. 다양한 무늬를 가진 고양이들은 각자의 개성이 뚜렷했다. 치즈태비, 고등어태비, 젖소, 정말 새까만 고양이까지 매력적이지 않은 아이들이 없었다. 공방 초창기 시절이어서 길고양이는 언니 하리에게 많은 영감을 안겨줬고 그만큼 다양한 길고양이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탄생했다. 이번 풍요하리의 바느질 도감 주인공도 바로 이 길고양이를 닮은 카드지갑이다.
바느질 도감 7화에 등장하는 펠트 브로치와 같이 이 카드지갑도 길고양이를 빼다 박았다. 쫑긋하고 뾰족한 두 귀가 동그란 얼굴에 붙어 있고 심심하지 않게 얼룩이 한쪽 귀에 바느질되어 있다. 전체가 보풀이 방지되는 펠트를 사용해 부드러우면서도 실용성이 가미되었다. 풍요하리 길고양이들은 트레이드 마크처럼 찢어지고 살짝 비스듬한 입꼬리와 한쪽으로 치우친 듯한 얼굴형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모두 하리의 디자인이 반영된 결과이다.
고양이들은 정면으로 눈을 응시하면 싸우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정면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 좋다. 고양이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 또한, 상대를 관찰하기 위함이지 별다른 의미는 없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길고양이들이 그러한 것처럼 우리를 곁눈질하는 것 같은 모습을 담기 위해 옆으로 살짝 틀어진 얼굴 모양이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이 카드지갑은 입체적으로 보인다. 단순한 캐릭터처럼 보이지 않고 고양이가 나를 쳐다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초반에는 치즈태비와 고등어태비만 만들어두었던 카드지갑 디자인은 인기에 힘입어 얼룩무늬 고양이까지 확장되었다. 이 카드지갑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들을 위해서도 제작되었는데, 안감에 고양이 발바닥 무늬가 새겨져 있는 원단이 사용돼서 완성도를 더욱 높여준다. 이는 카드지갑을 더욱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역할을 한다. 오른쪽 귀에는 금속 오링과 빈티지한 느낌의 과일 비즈가 달려있다. 지갑의 분실 위험을 막아주고 간단한 열쇠나 가방 걸이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 뒤로도 꽃을 달고 있는 고양이 카드지갑, 미니 사이즈의 키링까지 디자인이 더욱 발전해 왔다. 그만큼 이 길고양이 카드지갑도 풍요하리 펠트 작품의 조상 격인 것이다. 특별한 기회로 지역 축제에서 100개가 넘는 수량의 카드지갑 만들기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많은 분들이 이 길고양이들을 분양해 가셨다.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일상 속에 잘 스며들어서 사랑받는 길고양이들이 되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