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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Feb 10. 2023

풍요하리의 바느질 도감 - 14

마음을 담은 레터링 자수 파우치

  바느질 공방을 하지 않았던 때 내게는 큰 로망이 있었다. 내가 만든 파우치 위에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자수를 놓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 자수가 인기를 끌던 때라 학원 수강을 알아보기도 했다. 그때는 아직 회사를 다닐 무렵인데 동대문종합시장에 들러 완제품 형태의 리넨 스트링 파우치와 자수틀을 구입했다. 인터넷에서는 DMC 자수 실 세트를 구매했고 언니에게 부탁해 자수바늘도 구했던 것 같다. 

  완벽한 준비가 끝났으니 열심히 작품을 만들었으면 좋으련만 프랑스 자수를 더는 하지 않았다. 끽해봐야 장미꽃 두 개 정도 파우치에 수를 놓거나 옷에 무늬를 수놓고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 할지에 대한 감도 없었고 현생이 바빠 창의성은 바닥나 있던 상태였다.


  그 뒤로 시간이 흘러 2019년 나는 언니 하리 덕분에 나만의 자수 파우치를 만들 수 있었다. 무난하고 부드러운 색감의 리넨 체크원단과 간단하면서도 실용성이 좋은 크기의 파우치다. 파우치 앞면에는 동글동글 굴러갈 것 같은 레터링이 수놓아져 있다. 백스티치(박음질) 자수 기법만 알면 수를 놓을 수 있다.


  언니의 파우치로 나의 로망이 실현됨과 동시에 초보자들을 위한 파우치 패키지가 완성되었다. 반제품 형태로 초보자들이 쉽게 만들 수 있게 구성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고 귀여운 요소들과 함께 단추와 비즈를 달려있다. 패브릭 제품은 그대로 제작해도 예쁘지만 작은 장식들을 추가하면 더욱 아기자기하고 완성도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당시 언니 하리는 이 파우치를 만들 때 어떤 단추를 사용할지에 관해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때 사용하던 단추들은 국내에서 생산하지 않는 빈티지 단추일 때가 많았고 많은 재고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서 부자재를 구입했다. 사용된 단추들이 이런 나름의 사연들을 갖고 있다.




  당시 언니 찬스로 나는 조금 다른 모양의 자수를 수놓았다. 나의 첫 그림책 「갈기 없는 사자」의 서브 주인공인 토끼를 수성펜으로 그렸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듯 바느질했다. 중간에는 가장 좋아하는 꽃인 해바라기를 수놓았다. 포인트 컬러는 노란색을 사용해 토끼를 돋보이게 했다. 파우치 원단이 워낙 무난하고 예쁘기 때문에 다른 자수를 놓아도 참 잘 어울렸다. 지금 보면 서툰 실력이었지만 의미 있는 나의 첫 핸드메이드 파우치였다.



  여전히 바느질 초보 수강생님들에게 추천되는 레터링 자수 파우치. 풍요하리가 생겨나고 우리만의 로고도 만들어졌을 무렵에는 태그를 만들어 달았다. 풍요하리 태그와 가장 찰떡으로 어울리는 아이템이다. 작년에는 외부 단체 수업 때 제작하기도 했다. 바느질의 기초부터 중급 기술까지 두루두루 익힐 수 있기에 2주 차에 걸쳐서 꼼꼼하게 알려드렸다. 자신만의 파우치를 완성하신 수강생들의 밝은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유행을 타지 않고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는 디자인이 우리가 원하는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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