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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Feb 13. 2023

풍요하리의 바느질 도감 - 17

나인패치 냥프레임 플라넬백

2019년 12월 동생 풍요가 회사를 그만두고 공방에 나오기 시작했다. 직장인 티를 벗어나지 못해 허우적대던 시절이었다. 회사에서처럼 하루 일과가 정해져 있고 누군가의 오더를 받아 일하는 삶에서 갑자기 뛰쳐나오니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 바느질은 당연하거니와 글 쓰고 그림 그리는 모든 것들이 서툴렀다. 

블로그와 브런치도 막 운영하기 시작한 때였는데 당시 경험이 많이 쌓이지 않아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것이 어렵다고 느껴졌다. 하루하루 글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전부인 공방 생활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에 소개할 이 가방은 서툰 솜씨지만 특별히 장문으로 구성해서 글을 남겨뒀을 정도로 의미 있는 작품이다.


나인패치 냥프레임 플라넬백을 만들다.

나인패치 냥프레임 플라넬백

나인패ㅇ치 냥프레임 플라넬

초창기 작품에 관해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과거의 기억들이 소환되면서 그때의 생각과 감정들이 고스란히 떠오르곤 한다. 이 패치워크 가방을 보면 내가 마주했던 작품 중 가장 어려웠었다는 기억과는 대조적으로 금색 고양이 핸들이 너무나도 산뜻했다는 것이 떠오른다. 

처음 언니가 고양이 모양의 핸들을 보여줬을 때는 어떤 식으로 가방이 만들어지면 어울릴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럼에도 먼저 소개했던 풍요하리의 첫 가방도 쉬운 디자인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 가방이 더 기대되기도 했다. 


[나인패치 냥프레임 플라넬백]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완성됐다. 전작과는 완전히 다른 색감의 블루 그레이톤으로 구성되어 있고 입구 쪽은 너무 짙지 않은 브라운 계열 원단을 사용해서 반전을 두었다. 입구 천의 색과 가죽 부자재, 금색 핸들까지 톤이 일정하게 잘 어울린다. 가방은 네모 각지게 딱 떨어지는 쉐입을 지니고 있다. 당시 우리 자매는 각이 예쁘게 살아있는 가방을 선호했기 때문에 이 가방의 각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심지와 솜 등을 다양하게 사용해서 어떤 모양이 가장 예쁜지 연구했고 이내 시간이 흘러도 흐트러짐이 거의 없는 모양을 완성했다.



초심자가 그러하듯 다양한 길을 모색했던 우리 자매는 이 가방을 완제품으로 판매했었다. 공방을 운영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주문이 들어왔다. 많은 양을 소화해 낼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작업은 아니었지만 언니 하리의 노력으로 완제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가방을 보면 당시 고군분투하던 우리 자매의 노력의 순간들이 떠오른다. 어벙해서 바느질 공방 일은 전혀 모르던 동생과 가방을 완제품 하여 판매까지 했던 언니가 함께 무언가를 해보자며 진행했던 순간들이 지나 지금은 완성형을 가고 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동생 풍요는 바느질을 잘할 수 있게 됐고, 언니 하리는 풍요의 그림책 작업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저 당시의 나는 알았을까? 여전히 우리 자매는 풍요하리 공방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고도 말해주고 싶다. 여전히 잘 해내고 있고 있다고, 서툰 둘이 해나가는 거라 많이 느리지만 올바른 길을 잘 가고 있다고 말이다. 


오늘 아침 언니와 작품명을 지으면서 언니가 했던 쉰소리를 끝으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이 가방이 *나인패치인데 고양이 목숨이 아홉개라고 하니까, 아홉개의 고양이 목숨과 관련한 이름을 지으면 어떠니?" 

대체 '풍요하리'라는 예쁜 이름은 어떻게 지어낸 것인지 의문이 가는 우리 언니이다.


*나인패치(Nine patchwork): 9개의 조각 천을 기워 연결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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