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보들 아기곰 파우치 겸 지갑
고양이, 쥐, 하물며 사자까지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곰 캐릭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흔한 느낌이 들고 어렸을 때부터 곰 인형을 곁에 두어서 그런지 신선한 느낌이 없다. 곰 캐릭터를 개발하기 위해 몇 번의 시도를 해봤지만 공방 4년 차가 되었어도 만들어지지 못하고 제자리걸음 중이다. 그나마 그린 캐릭터 초안들도 마음에 들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이런 취향을 가진 내게도 곰으로 된 지갑이 하나 있다. 언니 하리가 플라넬 고양이 파우치 겸 지갑을 만들면서 동시에 제작한 작품인 [아기곰 파우치 겸 지갑]이다.
저채도의 플라넬 원단으로 제작된 아기곰 파우치는 기존 풍요하리 색감과는 조금 다르다. 밝고 따뜻한 색감을 주로 써왔던 풍요하리의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라 그런지 신선했다. 곰의 털색과 가까운 짙은 밤색이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고 조그마한 한쪽 귀에 보라색 얼룩과 나무 단추가 달려 있고, 하단 부분에는 푸른 계열의 천이 배치되었다. 곰 파우치는 고양이 파우치와는 다르게 실루엣만으로 곰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에 한계점을 느껴서 입 주변을 밝은 색 천으로 아플리케 했다. 실제 곰의 엄청 튀어나온 주둥이를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입 주변이라는 것을 보여주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또, 곰의 짧고 통통한 꼬리 모티브를 살리기 위해 손잡이에 보드라운 소재의 폼폼을 달아주었다. 실제 사용하면서 느낀 바에 따르면 저 손잡이를 자꾸만 잡고 싶어서 지퍼를 열었다 닫았다 할 정도로 기분이 좋은 감촉이다. 폼폼은 언니 하리가 펠트에 단단하게 부착하여 3년이 지난 지금도 떨어지지 않고 잘 붙어 있다. 그녀의 숨은 괴력(?)은 역시 알아줘야 한다. 이 파우치는 스트랩도 핸드메이드다. 스트랩도 패키지에 함께 포함되어 있고 재단한 뒤 바느질로 제작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파우치와 비슷한 톤을 유지하되 파란색 굵은 실로 스티치가 놓여 있어서 원 작품과 조화롭게 어울린다. 스트랩도 부드러운 감촉이라 손목에 착 감기는 느낌이 좋다.
장난기가 많은 나는 이 작품을 보자마자 얼굴을 수놓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개인의 취향이 반영되는 부분이라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얼굴을 수놓으니 살아 움직이는 곰 한 마리가 태어난 기분이 들었다. 반짝이는 퀼팅실로 눈을 수놓아서 각도를 달리하여 바라보면 감은 두 눈이 반짝거릴 수 있도록 표현했고 코와 입은 나무 단추와 브라운 실로 야무지게 ‘오’ 자 모양이 되도록 수놓았다. 이 특이한 입모양 덕분에 우리 자매는 한동안 이 작품을 ‘오곰이 파우치’라고 부르곤 했다. 단순히 ‘오’ 자 모양의 입을 갖고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지만, 다른 작품들 사이에서 명확한 이름을 지니고 있는 것은 꽤나 이례적인 일이다. 여전히 아껴서 잘 쓰고 있는 (변형된 오곰이) 파우치, 오늘 다시 꺼내 살펴보아도 참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문제)
곰과 고양이가 나란히 놓인 모습은 참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비슷한 소재 작품들이 주는 동질감과 조화로움이 보는 이로 하여금 기분이 좋게 만든다. 제작한 기간이 오래된 만큼 해당 구성의 패키지는 모두 판매가 완료됐다. 대신 새로운 원단으로 언제든지 재 생산이 가능하기에 리패키징을 해보고자 하는 1순위 작품이다. 하지만 뒤에 밀린 작품들이 무수히 많기에 지금은 만들어진 샘플을 전시하는 용도만으로도 충실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기특한 파우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