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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Feb 20. 2023

풍요하리의 바느질 도감 - 24

숨은 고양이 패치워크 숄더백

2 중순의 풍요하리 공방에는  햇살이 가득 들어온다. 겨울  춥고 매서운 계절이 지나고 나뭇가지에 싹이 움트기 시작할 무렵이다. 우중충했던 기분은 다시금 희망찬 기운으로 차오르고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았던 위기가 끝나간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봄에는 봄을 닮은 작품들이 탄생한다. 2020년에도 그랬던 것 같다. 자매가 공방을 막 함께 시작했던 때 앞길에 대한 불안감과 설렘이 공존해서 매일이 새롭고 낯설게 느껴졌다. 어디든 뛰쳐나가서 봄바람을 맞고 싶었지만, 팬데믹이 찾아왔고 그런 마음들이 당시 작품들에 담겨있다.

그런 이유에선지 당시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설익었던 그때의 감정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언니 하리가 처음 이 숄더백을 만든다고 했을 때도 비슷했다. 봄날의 어느 날 하리는 작품 스케치 하나를 보여주면서 가방을 만들겠다고 했다. 정사각형의 패치워크들이 배열되어 있는 에코백 형태였는데 다른 디자인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패치워크 중 한 조각에 고양이 귀가 뾰족뾰족 튀어나와 있는 것이다. 마치 나를 찾으라고 말하는 것처럼 고양이 한 마리가 원단 조각들 사이에 숨어 있는 것이다. 그 아이디어가 좋아서 한참을 놀랐다. 숨은 고양이를 찾는 가방이라니, 심미성과 재미요소까지 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색감도 두 말할 것이 없었다. 레드 톤과 블루 톤의 패치워크 원단 조각들이 이어져 있다. 둘 다 언니 하리의 감각이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어느 한 부분 튀는 것 없이 조화롭게 잘 선택되었다. 특히 블루 톤은 단순하게 같은 색 배열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베이지, 옐로 톤도 함께 섞여 있다. 분명히 블루톤인데 어딘지 모르게 따뜻한 색감이다. 둘 다 내 마음에 쏙 들었지만, 둘 다 만들기엔 욕심이었고 블루 계열의 가방은 나도 하나 만들기 시작했다. 이 가방을 메고 다니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은 꼭 쳐다본다. 그 시선들에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진다.


공식적으로 판매하는 첫 가방 패키지답게 구성 하나하나를 신경 써서 골랐다. 가방에 들어가는 장식 끈을 고르기 위해 동대문 시장을 발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녔다. 샘플에 직접 갖다 대보면서 열심히도 골랐다. 그 당시 나는 잘 모르는 분야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기 때문에 긴장을 잔뜩 하고 있었다. 시장 사장님에게 말 붙이는 것조차 힘들곤 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어딜 가서든 농담도 따먹고 가끔은 흥정도 한다. (흥정은 언니 하리가 더 잘한다) 긴장감 없이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것을 척척 고를 수 있게 된 지금이 감사하다.



이 패키지에는 풍요하리 최초로 사진 설명서가 포함돼 있다. 샘플을 제작하면서 사진을 하나하나 찍어 설명과 함께 편집했다. 설명서는 패키지 작업 중 가장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언니 하리는 이 가방 설명서를 중철 제본된 책자 형태로 제작했다. 작은 책처럼 편하게 소지하면서 오래 쓰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그 이후로 풍요하리 설명서는 자리를 잡게 된다. 구매하신 분들이 혼자서도 작품을 잘 만드실 수 있도록 하는 게 첫 번째다. 두 자매가 여러 번 크로스 체크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는다. 패키지를 만들면서 가장 뿌듯함을 주는 작업이다.


블루톤 가방의 패치워크 속 숨은 고양이는 진 남색에 체크와 꽃무늬 패턴이 들어가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패턴 모습이다. 이 모습에 반해서 가방을 만들었다. 청바지에도 잘 어울리고 여성스러운 원피스를 걸칠 때에도 잘 어룰린다. 봄 햇살을 따사롭게 받고 있어서 그런지 사진도 참 잘 나왔다. 이 패키지는 현재 모두 판매되어 샘플만 공방에 전시해두고 있다. 질리지 않고 여전히 손이 잘 가는 작품, 이 가방을 만드신 분들도 다시 찾아온 봄에 이 가방을 찾아주실까? 이번 봄에는 우리 자매도 이 숄더백을 하나씩 메고 봄바람 좀 쐬러 나가야겠다. 초심을 잃지 말고 희망을 그리는 오늘을 살기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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