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스마트폰을 국산 제품으로 바꾸면서 자연스레 모바일 페이를 사용하게 되었다. 지갑이 없어도 결제할 수 있어서 편리한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갑을 들고 다닌다. 시장에 갈 때 현금을 쓰기도 하고 모바일 신분증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왠지 못 미더워 직접 들고 다닌다. 또, 그냥 지갑이 좋다. 지갑에 가지런하게 담겨 있는 카드와 우수회원에게만 주는 황금색 도서관 대출증도 담을 수 있어서 좋다. 어렸을 때부터 지갑을 줄 곧 사용해 왔던 내게 아무리 편리한 스마트 페이가 생겼다고 할지라도 지갑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쓸 예정이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언니도 지갑에 진심이다. 한 지갑을 오래 사용하기도 하고 여러 지갑을 돌려가며 사용하기도 한다. 옷처럼 지갑도 기분에 따라 다양하게 쓰고 있다. 이런 우리에게 지갑을 만드는 일은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파우치보다 난도가 높은 지갑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언니 하리는 도전의식을 갖고 지갑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왕이면 우리 캐릭터를 쏙 빼닮은 디자인으로 말이다.
원단을 사용한 지갑은 시중에 많다. 이미 많이 만들고 계시기도 하고 우리도 핸드메이드 제품을 구입해서 사용하기도 했었다. 하리가 지갑을 펠트로 사용한 것은 소재가 주는 특이성과 디자인을 표현해 내는데 많은 이점을 주기 때문이다. 도톰하면서 보풀을 방지하는 펠트가 사용되어 지갑의 실루엣을 잡아준다. 풍요의 피부색을 닮은 베이지색 펠트를 기본으로 사용하고 그 위에 얼룩을 아플리케 했다. 그냥 얼룩을 올려도 되지만 조금 특별한 무늬를 추가했다. (그냥 얼룩을 올린 버전은 2022년 완제품으로 탄생한다.) 베이지톤과 어울리는 잘 익은 빵 색 펠트를 사용해서 만든 프레즐이 등장한다. 프레즐은 하트를 닮아 형태가 예쁜 간식이라 공예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모티브이기도 하다. 고소한 프레즐은 식빵 같은 풍요 위에 올려주었다. 그 위에 설탕 같은 비즈들이 솔솔 뿌려져 있다. 물론 하나하나 바느질해 준 것이지만, 반짝반짝 빛나는 게 맛있는 설탕 같다.
지갑 안쪽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야무지게 지퍼를 이용하여 동전을 수납할 수 있게 디자인했고 지폐와 카드칸까지 구비하고 있다. 옛날사람이라 ‘신권 지폐’라는 말을 쓰는데, 신권이 들어가도록 너무 크지 않은 사이즈다. 이로써 지갑의 모양새는 모두 갖춘 셈이다. 지갑 테두리를 두르고 있는 바느질 기법은 펠트의 면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스티치 기법이다. 단순히 안감과 겉감을 고정하는 형태가 아닌 실이 테두리를 한 번 더 둘러 고정해 준다. 이덕분에 지갑의 끝부분이 해지지 않고 튼튼하다. 지갑 안쪽도 요모조모 숨은 공간과 같은 기법의 스티치를 사용해 완성도를 높였다. 지갑은 튼튼함이 1순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직접 지갑을 오랜 기간 직접 쓰면서 사용감을 확인했다. 펠트 지갑도 가죽 지갑처럼 사용할수록 손때가 묻어 멋스러워진다는 점이 놀라웠다. 판판했던 표면이 뭉글게 바뀌고 때도 조금 타면서 친근감이 느껴졌다. 소재가 유연해짐을 느꼈고 똑딱이도 부드러워졌다. 무엇보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풍요하리만의 디자인이라는 점이 가장 유니크하다. 사람에 따라 취향을 탈 수는 있겠지만 우리같이 고양이를 좋아하고 아기자기한 것을 찾는 사람이라면 자신 있게 권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지갑 덕분에 오레오 반달이 지갑과 미니 풍요, 반달 카드지갑이 탄생했다. 시초가 된 만큼 애정이 깊고 오래도록 애정해주고 싶다. 시간이 지나 필요성이 사라져도 찾는 옛날 물건들처럼 프레즐 풍요 반지갑도 오래도록 누군가와 함께하길 바라본다. 마지막 사진 속에는 풍요 지갑에 무지개가 내려앉은 풍경이다. 내가 무지개 좋아하는지는 어떻게 알고 온 세상이 내게 무지개를 선물한 느낌마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