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요 Mar 03. 2023

풍요하리의 바느질도감- 35

봄을 기다리며, 그린그린 미니백

우리 자매는 봄이 오면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출근하다 만나는 메마른 가지 위에 움튼 새싹, 겨우내 보지 못했던 연초록빛 새 잎, 꽤나 길어진 오후 햇빛 같은 것들이다. 직장인 시절에는 그냥 스쳐 지나갔던 것들이 요즘에는 보석같이 반짝이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다 잊고 지내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그날은 한창 회사에서 버티지 못할 만큼 힘들던 때였다. 매일 잿빛 같은 일상이 반복되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던 휴일에 집 밖으로 무작정 뛰쳐나갔다. 얇은 외투 하나만 걸쳐도 될 만큼 따사로운 날씨에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이었다. 봄철 미세먼지와는 상관 않듯,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시름을 뱉어내듯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리곤 부드러워진 호흡을 따라 평상시 걷지 않았던 이길 저 길을 걸어 다니며 노랗고 푸른빛의 향연을 마주쳤다.


아! 봄이구나.

내 안의 어둠에만 파고들다 보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온 줄도 몰랐다. 스쳐 지나가던 길 위에서 봄을 만나고 계절의 변화를 느꼈다. 무채색으로 보이던 세상이 그제야 제 색을 찾아 총천연색으로 빛이 났다. 봄은 내게 그런 계절이다. 온갖 것들의 기지개 켜는 소리에 시끌시끌하면서도 밝은 에너지가 가득한 때 말이다.


언니 하리도 나처럼 봄을 느꼈던 것 같다. 어느 봄날에 초록초록한 잎과 예쁜 봄꽃들이 가득한 패브릭을 내게 보여주며 예쁘지 않냐고 물었던 것이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럽고 봄을 닮은 원단들이었다. 초록색이 기본 바탕인데 여러 동물들이 동화처럼 펼쳐져 있고 잎과 꽃들도 함께 어우러져 있다. 또 다른 원단은 은은한 초록색 원단에 낙엽관목 ‘애니시다’와  같은 수형이 그려져 있었다. 얇아진 옷차림에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실용적인 미니백이었다.


이 미니 크로스백만이 가진 디자인적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짧은 끈과 긴 끈을 서로 묶어 리본처럼 마무리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리본 묶인 크로스끈을 보면서 여유롭게 유유자적하는 나그네가 떠올랐다. 큰 짐 따위는 제쳐두고 그날 하루 필요한 소소한 것들만 챙겨서 떠나는 길, 그 길을 함께하는 작은 짐보따리가 떠오른 것이다. 실제로 가볍고 산뜻한 가방이다. 가죽가방 같은 무거운 느낌은 싫고 숄더백은 귀찮을 때 이 가방 하나만 있으면 만사형통이 될 것 같다. 가방 입구에는 하리가 오랫동안 수집한 빈티지 단추와 얇은 가죽 끈을 달아주어 안정성을 높였다. 유리 소재의 이 단추 덕분에 가방이 더 고급스러워 보인다. 하나밖에 없는 빈티지들이라 가방마다 디자인이 다른 단추를 장식해 재미를 더한다. 내 것에는 흰색 불투명 유리에 금박이 그려져 있다. 정말 마음에 든다.



이 가방을 만든 그 해 봄도 우리 자매는 꽁꽁 얼어 있었다. 좀 더 나아질 내일을 그리면서 봄을 닮은 작품들을 만들었던 것 같다. 올해 다시 찾아올 봄의 모습은 어떨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된다. 이번 겨울이 우리에게 조금 더 추웠던 것만큼 다가오는 계절이 따뜻했으면 좋겠다. 그와 동시에 사진에서도 느껴지는 이 따뜻한 온기를 우리의 바느질 도감을 읽는 이들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본다.


“삶은 나에게 항상 미소 짓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삶에 미소 지었다.”

라고 말했던 화가 라울 뒤피처럼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만드는 작품에 미소를 지어 온기를 더할테니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풍요하리의 바느질도감 - 3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