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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Mar 06. 2023

풍요하리의 바느질 도감 - 38

어린이들을 위한 바느질 시간, 펠트 당근 필통

2021년 한창 봄이었던 때, 언니 하리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풍요하리입니다."

평소처럼 전화를 응대하던 언니는 갑자기 노트와 펜을 찾았고 옆에 있던 나는 필기도구를 건네며 전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 OO도서관인데요. 수업 의뢰를······."

오랜만에 들어온 다회차 수업 전화였다. 우리 자매는 팬데믹 기간이 시작되고부터 비대면 수업을 진행해 왔다. 우리 세대도 비대면 방식이 익숙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온라인 화상 프로그램을 공부했던 것이다. 외부 수업에서 경험이 쌓인 하리는 능숙하게 전화를 받고 스케줄을 잡았다. 진행하려는 이 기관의 특이점은 그림책 활동의 일환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점이었다. 이는 그림책에 맞춰 작품들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당근'을 모티브로 하여 작품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던 그림책에 등장하기도 했고 아이들이 쉽게 실용적인 소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당근은 필통으로 탄생하게 되었는데, 연필과 각종 필기구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디자인하였다. 도안을 만든 후 재료들을 선별하기 시작하였고 당근의 몸통에 쓰일 펠트 원단을 고르는 일이 가장 재미있었다. 당근색 펠트 위에다 도안을 그려놓으니 당근 말랭이를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침이 고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의 포인트는 팔랑팔랑 자유롭게 움직여 다니는 팔에 있다. 하지만, 이전 바느질도감 크레파스 작품들을 소개했을 때와 같이 양손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그라미 모양 펠트 4장을 재단해야 한다. 두 팔과 손을 디자인에서 제외하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었으나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재미요소를 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조금 더 손을 써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풍요하리의 어린이 패키지의 장점은 예쁜 손재단에 있다. 바느질이 처음이고 서투르더라도 모양 자체가 반듯하면 어느 정도 작품 퀄리티가 나와준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첫 바느질 하는 순간'을 좋은 기억으로 선물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고사리 손으로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여 만든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두 손이 생기니 확실히 당근이들에게 활력이 생긴 것 같고 자꾸 어떤 포즈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춰 단계를 확 줄이고 재미 위주로 구성한 결과 수업은 만족스럽게 진행되었다. 어린이들은 바느질을 처음 접하지만 두려워하지 않았고 스스로 끝까지 해내는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우리도 더 열의를 갖고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늘 활기가 넘친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물어보고 조금 늦는 친구들을 기다릴 줄 아는 모습에서 의젓함이 느껴졌다. 성인들은 의사소통에 있어서 소극적일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상호소통했다. 아이들의 때 묻지 않는 순수함이 이런 것일까 싶다. 



아이들에게서 탄생한 당근이들의 실물이 참 궁금하다. 비대면이라 완성된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없어서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강한 어린이들이 인증샷을 보내주어 우리들은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가끔 창의적으로 작품을 변신시킨 것도 있었다. 눈을 동그랗게 만들어 준다던가, 얼굴에 다른 무늬를 그려 넣는 경우 등이었다. 어린이들은 모두 예술가임이 분명하다. 

부디 풍요하리와의 바느질 시간을 통해 손으로 만드는 행위에서 즐거움을 느꼈길, 어른이 되더라도 그 순수함을 잊지 말고 즐거운 것들을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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