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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요 Mar 05. 2023

풍요하리의 바느질도감 - 37

하리의 포레스트 숄더백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 화면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니 일요일 오전 7시 20분이었다. 어제 자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간이 오전 1시 30분이었던 것이 떠올라 피곤함이 잔뜩 몰려왔다. 침대에 뒤척거리다 찌뿌둥한 몸 상태가 싫어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뒤 집 밖을 나섰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올해 첫 걷기 운동을 하고 싶어진 것이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운동이라 나가기 전 스트레칭도 야무지게 하고 운동화도 챙겨 신었다. 지도 앱을 켠 뒤 목적지를 '도서관'으로 설정하고 빠른 속도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목적지인 도서관은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어서 주변에 숲과 나무가 울창하다. 도서관에서 있다가 졸리거나 답답하면 옆에 나있는 길을 따라 걷기 좋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자주 찾던 곳이었다. 이러한 위치적 특성 때문에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걷기에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르막과 내리막 길이 자기주장이 센 편에 속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도서관을 찾아가는 길은 험난했고 턱까지 숨이 차오르는 통에 미세먼지 '나쁨' 수준에도 마스크를 내던질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언덕을 다 오른 뒤, 지도앱의 안내에 따라 주택가 옆으로 나 있는 샛길로 들어갔다. 몇 걸음 지나지 않아서 그 길은 끝났고 그 앞에 펼쳐진 광경은 놀라웠다.


숲이다!

숲이었다. 소나무와 아직 돋아나지 않은 새싹들을 간직한 벚꽃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벌써 와서 운동을 하고 있었고 그와 대조적으로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저질체력의 나는 스스로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내 기분이 상쾌해졌다. 오래간만에 마주한 숲이 반갑다고 인사해 주는 것 같았다. 또, 내가 좋아하는 벚꽃나무도 자신을 알아봐 줘서 고맙다고 하는 것 같았다. 언덕을 오르는 것은 힘들었지만, 길 끝에서 마주한 숲은 환상적이었다.

 

숲에는 생명이 흘러넘친다. 잊어버린 어릴 적 추억들이 떠오르고 세포 하나하나가 숨을 쉬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 숲은 우리 자매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편안함, 부드러움, 생기와 같은 무형의 모습으로 우리를 어디론가 안내해 준다. 언니 하리는 '숲'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붙잡았다. 연초록 빛의 새싹과 무성한 이파리의 진녹색, 깊은 숲에서 만날 수 있는 남색, 숲의 그림자를 담은 회색 등 여러 색들을 패치워크 원단에 담았다. 패치워크 원단들은 서로 어슷하게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나무들이 서로를 피해 자라는 모습 같다고 생각했다. 뿌리는 한 곳에 깊이 박고 가지는 서로에게 얽혀도 함께 공생하면서 살아가는 모습 말이다. 


패치워크된 원단 조각들은 옆면과 바닥으로 연결되어 있고 앞, 뒷면은 잔디 같기도 침엽수림 같기도 한 반복적인 패턴원단이 배치되었다. 마치 침엽수가 빼곡한 고산 지대를 감싸고 있는 울창한 숲의 모습이 떠오른다. 언니 하리는 이 정도까지 생각하고 가방 이름을 짓지는 않았겠지만, 숲을 조금 전 보고 온 나는 가방 이름이 참 걸맞게 지어졌다고 생각했다.



이 가방은 옆면과 아랫면 폭이 큰 편이라 여러 물건을 담기에 좋다. 패치워크 원단이 하나로 연결 돼 있어서 내구성도 튼튼하다. 거기에 나무 색을 닮은 가죽 끈을 달아주어 진정한 숲이 완성되었고, 자연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하리를 울펠트로 만들어 달아 줌으로 가방도 완성되었다. 흰 티에 청바지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은 뒤 들고나가면 딱일 것 같은 가방이다. 원단 가방의 가장 큰 장점은 가벼운 무게도 한몫을 하니 나들이 갈 때 추천하고 싶다.


일요일 오전, 짧은 숲 여행을 마치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숲을 바라보며 환기시킨 내 머릿속이 상쾌했다. 덕분에 원하던 책을 골라 마음껏 독서했고 행복에 겨운 시간을 보냈다. 이제 일주일에 한 번은 숲에 꼭 가고 싶다. 언니의 '하리 포레스트 숄더백'처럼 숲에서 얻은 영감으로 풍요하리만의 작품을 또 만들어내고 싶다. 그리고 '숲 컬렉션'을 만들어 전시도 하고 숲길을 사람들과 함께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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