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행복 속 임수정의 파우치, 해바라기가 되다
때는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 언니 하리가 노란색의 원단들을 꺼내 들고 요리조리 배치하면서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마치 명절날 온 가족이 모여 밀대로 꾹꾹 밀어 만든 만두피처럼 크고 납작한 모양이었다. 화사한 원단이 두 눈을 사로잡았고 이내 언니에게 무엇을 만드냐고 묻자 그녀는 대답했다.
“행복 파우치.”
행복파우치. 이름을 듣고서는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기운을 담아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넣은 걸까, 아니면 언니가 그냥 지은 걸까 궁금해졌다. 그러자 언니는 ‘임수정이 영화 [행복]에서 들고 나왔던 파우치’라고 덧붙여 말하였다.
그렇구나, 여전히 아름다운 배우 임수정 님이지만 그녀의 리즈 시절을 담고 있다는 그 영화에서 등장한 파우치였던 것이다. 그 뒤로 행복파우치에 꽂힌 나는 영화 [행복]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영화 속에 등장한 임수정 님은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청초했다. 그리고 자칫하면 언밸런스 해보일 수 있는 퀼트 파우치를 그녀는 청순함으로 소화해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나도 언니를 따라 행복 파우치를 만들자고.
물론 나도 안다. 내가 행복 파우치를 들고 다닌다고 임수정 님의 발끝자락도 따라갈 수 없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파우치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이 파우치가 ‘해바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우리 자매는 매우 비슷한 취향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언니의 취향해서 기인한 경우가 많았다. 어렸을 때부터 아기자기한 것들을 모으고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언니를 따라 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그 관심이 꽃과 식물까지 확장되었고 이 작품을 만들기 전 옥상 작은 텃밭 공간에 해바라기 씨를 파종하기도 했다. 그 해바라기는 무럭무럭 자라서 우리 가족처럼 삼삼오오 모여 꽃을 피워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언니는 이 파우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노란색의 해를 닮은 파우치가 일상 속 풍요로움을 잘 표현해 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파우치의 전체적인 색감은 ‘노랑’으로 통일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기 다른 매력의 원단으로 구성된 것을 알 수 있다. 강아지가 뛰어다니고 있거나 꽃밭도 보이고 아이들, 토끼, 허수아비 같은 모티브들이 숨어 있다. 해바라기 이파리 하나하나를 보다 보면 동화를 보고 있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또, 해바라기 씨앗 부분은 갈색의 도트무늬 원단으로 배치되었다. 소위 노랑은 ‘날리는 색’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작은 포인트로 무게중심을 두면 조화로움이 극대화된다. 또, 씨앗 주위로 금색 레이스가 감싸고 있고 금색 비즈로 포인트를 주었다.
이 작품의 또 다른 묘미는 퀼팅 라인에 있다. 하리가 이 퀼팅 라인을 만들기 위해 골치 아파한 적이 있었기에 기억에 더 잘 남아 있다. ‘퀼팅’이란, 원단과 원단 사이에 솜을 넣어 바느질하여 무늬를 도드라지게 하는 기법으로 솜을 안착시키면서 모양도 예쁘게 하는 주요한 기술이다. 원단과 솜을 사용해서 손바느질하는 경우 거의 퀼팅 기법이 사용되기 때문에 손바느질 작품을 ‘퀼팅 작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파우치는 해바라기 꽃을 돋보이게 할 수 있도록 곡선 퀼팅을 사용해서 꽃잎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퀼팅을 다 하고 나면 작품이 거의 완성된 것 같은 착각이 들정도로 완성도가 확 올라간다.
나는 이 파우치를 완성했지만 들고나갈 수는 없었다. 아무도 모르고 궁금해하지도 않겠지만 괜히 혼자 찔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파우치를 만들면서 그 시절의 임수정 배우를 다시 만날 수 있어 좋았고, 우리가 좋아하던 해바라기를 작품으로 탄생시킬 수 있어서 행복했다. 재단 가위까지 넣을 수 있는 넉넉한 크기 덕분에 쏘잉 파우치로 열심히 사용하고 있는 해바라기 행복파우치. 그 이름답게 우리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