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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공간에 대한 가치

나를 조금씩 찾아가는 공방 운영 과정

by 풍요

퇴사한 지 딱 두 달이 되어간다.

그 사이 많은 일을 했고 다양한 사건이 일어났다. 흔들리기도 많이 흔들렸다. '직장에 들어갔던 나'에서 '직장을 만들어가는 나'로의 변화가 어떤 때는 달고 어떤 때는 쓰다. 퇴사를 했다고 바로 무기력증이 낫는 것도 아이디어가 반짝 솟아나는 것도 아니다. 퇴사 직전 앓던 지병은 낫고 악화되길 반복했다. 그럴 때 문득 '회사에서 계속 버텼을 경우, 아프기도 안 아프기도 했으려나. 버팀이 답이었나.' 하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불안이라는 어두운 물을 들여갔다. 오늘은 그 물들어 버린 마음을 희석시키고 더 진하게 채색하기도 했던 순간들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처음 취업을 했던 때에도 '일'이라는 중요한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졸업하고 입학하는 일련의 과정처럼 처음에는 좌충우돌해도 언젠가는 익숙해지고 적응하리라고 생각했다. 주변에 꾸준히 일하는 부모님, 친구들을 보며 나도 어깨를 나란히 하며 평생을 살아가리라고 느꼈다.


학자금 융자를 갚기 위해 졸업 전 취업을 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정말 자신감이 없었다. 누가 나를 고용해주고 급여를 주기만 해도 감사하던 시절. 벤처기업에서 야근, 주말, 초과 근무 수당에 대해 들어는 봤지만 쥐어본 적이 없었다. 밤을 새우고 야근과 외근은 잦았다. 보람은 있었지만 첫 회사에서 첫 공황장애를 겪었다. 가까운 출근 거리였지만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임파선염을 앓기 시작했다. 살이 빠지고 입맛이 없고 병원을 전전했지만 낫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퇴사하지 않았다.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무렵 주변 동료들이 회사를 떠났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나는 그들의 빈자리가 굉장히 컸다. 해당 조직 생활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남에도 개인 노력과 성의 부족이라는 틀로 그들에게 비난이 가해졌다. 그렇게 버티다 회사 사정에 의하여 퇴사하게 됐다. 1년 반밖에 되지 않은 첫 회사 경험이 나에게는 쓰디썼다.


두 번째 회사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야근은 잦고 상사의 권력은 셌다. 나약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버텼다. 버티다 보니 퇴근 시간도 점차 빨라지고 일도 나름 익숙해져 갔지만, 몸은 새로운 질병을 얻었다. 이번엔 과도한 컴퓨터 업무로 인한 비문증이 생겼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해야 했고 많이 벌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했다.


지금까지의 직장생활로 말미암아 '일'에 대한 스스로의 가치관을 의심하게 됐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는 스스로 정하는 것이 맞다는 것은 알지만 좀처럼 일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다. 기계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때우듯이 지나가는 하루가 켜켜이 쌓여 무기력을 만들었다. 무엇을 잘하는지 즐거워하는지를 잊어가고 있었다. 회사가 달라졌어도, 나의 생각이 달라지지 않으니 변화가 없었다. 거기에다 환경도 한몫을 했다. 열심히 해도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구조, 칭찬보다 힐난이 가해지는 환경 속에서 일에 대한 무가치성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내가 요즘 공방에서 무언가 조금씩 한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온라인 클래스 글을 올리기도 한다. 또, 당장 수익이 나지 않지만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한다. 그럼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성공할 수 있을까. 밥벌이나 할 수 있을까. 퇴사 전 나를 향해 무자비하게 던져주던 비 퇴사자들의 걱정과 약간의 비아냥이 상기됐다. 그들 말대로 나는 길을 잃고 다시 돌아갈까? 하는 무수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흙탕물로 만든 적도 많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나를 보면 어떤 때보다 평온하다. 자유롭고, 일을 스스로 찾는다. 나는 기본적으로 일을 좋아한다. 잘하고 싶기도 하고.


일에 대한 가치관이 바뀐다. 내 공간, 내 일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다는 결과 중심적 사고에서 과정 중심적 사고로 변환되는 것을 느낀다. 과정 중심적이라는 것은 기쁨과 생산적인 느낌을 동반한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라는 것. 일이 가치 있다고 느껴지는 것. 그것이 나의 일이겠지.


그리고 그것이 내가 운영하는 공간의 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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