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을 끄는 것부터 시작된 나의 진짜 퇴사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의 호칭은 '사서 선생님'이었다.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한 뒤 전공 무관 한 일을 하다 뒤늦게 도서관 취업에 도전했고, 합격했다. 그 당시만 해도 세상이 다 내 것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취업 수기도 감히 쓸 만큼 사서로서의 삶이 기대되었다. 처음 발령받은 곳 또한 내가 원하던 어린이 도서관이었다. 개관 예정인 도서관인 만큼 미세먼저 매우 나쁨 수준의 열악한 환경에서 몇 달간 고생했지만 보람 있었다. 흰 도화지에 묽은 크레파스로 쓱쓱 그리는 느낌으로 도서관이 하루하루 변해가는 모습이 즐거웠다. 이전 직장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천직을 만난 게 아닐까 하는 설레발도 싫지만은 않았다. 채도가 마이너스 수준이었던 나의 삶에 쨍한 총천연색 빛 삶을 주는 순간들이었다. 도서관 이용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만성피로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감사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2년 9개월, 나는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입 속에서 수 없이 되뇌었던 '퇴사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은 순간, 귓 전을 때리던 소음이 잦아들었다. 손에 쥔 땀이 차갑게 식어버리고 바닥 속으로 가라앉는 기분을 느꼈다. 아! 이제 다 끝났구나. 그 많던 복잡한 실타래를 이제 한 가닥 한 가닥 풀어내야지 하는 생각으로 눈을 감았다.
사실 도서관에서 나의 찬란했던 순간은 길지 않다. 나는 회사에서 상급자에게 부당한 일을 당했고, 항거했으며 그 뒤 속된 말로 회사에서 찍혔다. 피해자의 편에 서주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기대어 퇴사하지 않고 버텼다. 그 세월이 2년 넘게 지속되는 와중에 채도를 잃어버린 다른 근무지로 발령을 받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발령이 났던 그 시점에 내 마음속 찬란함은 이미 자취를 감췄던 것 같다. 사람들과 단절된 공간에서 과거의 기억에 갇힌 채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오랜 터널을 지나며 밝은 빛이었던 사서로서의 나의 삶은 수명이 다 해갔고, 새로운 삶에 대한 생각이 커졌다.
신참 창업가가 된 계기도 퇴사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빠르게 소진됐고 불능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다양한 염증성 질환이 온몸을 돌고 있었고 도서관은 날이 갈수록 다양하고 힘든 업무들을 떠안았다. 이미 사서로서의 방향성을 잃은 나에게 낙관을 기대할 수 없는 미래였다.
하지만 역으로 이 시간 동안 나는 새로운 삶을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사서로 일하면서 가장 감사한 부분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긴 터널 같은 순간들은 내가 책을 정말로 좋아하고,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예체능 계열과는 무관한 삶이라고 생각한 내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일을 발판 삼아 작은 작업실을 언니와 함께 꾸려가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퇴사를 할 수 있었다.
구구절절한 회사 생활이 끝나고 한 달 간의 휴식기를 통해 나는 '신참 창업가'라는 호칭을 새로 얻게 됐다. 누가 불러주는 호칭도 아니고 스스로에게 규정한 이름이지만 썩 마음에 든다. 사실 퇴사 직후 2주간은 오전 알람을 꾸준히 켜놓았다. 6년여간 일을 하면서 생긴 노예성 습관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리고 매일 무언가를 해냈다. 미뤄뒀던 청소, 언니와 작업 공간 꾸미기, 다양한 공예품 만들기 등 닥치는 대로 무언가를 했다. 마음의 공허함을 느낄 새 없이 무언가를 가득가득 채웠다. 그러다가 또 소진되고 말았다. 퇴사 후 회사 후유증이 남게 된 것이다. 일하던 시간에 무언가를 계속하는 것으로 퇴사자로서의 나를 계속 부정했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 맞춰진 일상에서 또 퇴사했다. 진짜 쉼과 고요를 통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기로 한 것이다.
또 다른 퇴사 후유증은 바로 불안이었다. 회사에선 불안이라는 감정을 이용하기도 한다. '원하던 만큼의 성과급을 얻으려면 경영 평가를 잘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일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 라던가. '회식에 나오지 않으면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라는 팀장의 이야기까지 불안의 순기능을 십분 활용한다. 그 불안은 퇴사 후 증폭된다. 불능한 상태가 지속될 것 같은 느낌. 사회 속 일원이 아닌 것 같은 무능함. 미래를 비관하게 만드는 큰 후유증이었다.
결국 나는 퇴사를 퇴사하기 위해 알람을 껐다. 맘껏 잔다. 양껏 먹는다. 그러자 삶의 작은 것들이 눈에 보인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작은 공방을 운영하고 일상 속 풍요를 찾고 싶은 여정을 시작할 실마리를 발견한다. 아직은 후유증이 남아있지만 이제는 딛고 일어서고자 오늘의 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