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없다.

그저 묵묵히 사는 수밖에

by 풍요

오랜만에 브런치 앱의 버튼을 꾹 눌렀다.


한 달여간 긴 잠을 잔 것처럼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몇 명의 구독자가 늘어있다. 글쓴이의 자취가 흐릿해져 빳빳해져 버린 노트를 누군가 꾸준히 들춰본다. 역시 기록이란 참 좋다.


오늘 날씨는 을씨년스럽다. 월요일 출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겠지, 그리고 묵묵히 오늘을 보내는 나도 뒤흔들렸다. 변화무쌍한 날씨에 갈대가 휘어지듯 휘청이는 스스로에게 그저 오늘을 살아가 보자고 다독거린다.


아침에는 옥상에 파릇이 자라고 있는 상추와 고추 모종에 물을 준다. 조만간 삼겹살에 쌈장을 넣어 먹는 맛있는 한 쌈을 기대하며 이들의 생장을 재촉해본다. 가파른 옥상 계단을 내려와 대문을 철컹 닫고 길을 나서니 제법 따사로운 햇살이 내딛는 발걸음에 빛을 비춰준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뎌 공방에 도착한다.


딸랑딸랑

제법 청아한 울림소리가 인상적인 벨 도어 소리에 저 멀리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냅다 달려온다. 까만 밤하늘 초승달이 또렷하게 반전되어 고양이 턱에 매달려있다. 이 요물 같은 고양이의 이름은 ‘반달이’로 지었다.

그림을 못 그린 것 같지만 어렸을 때 얼굴이랑 굉장히 닮았다. 그래서인지 성묘의 얼굴을 그리 기대하지 않았던 막내 반달이었다. 나중에 반달이 글을 별도로 쓰겠지만, 요즘 갈수록 예뻐지고 있다. 물론 자주 봐서 적응된 건지는 모르겠다...


오늘은 공방에서 가방을 만들었다. 언니와 오랜 내 친구에게 줄 선물. 가방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다. 공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도 세 시간에 걸쳐 완성해낸다. 요즘은 그림을 그리던, 재봉을 하던 꼭 끝을 내려고 한다. 더디고 힘들어도 마침표를 찍는 연습을 한다. 인내심과 지구력을 기르고 싶다. 이 둘을 길러서 우주 최강 일 잘하는 사람이 될 거다.


집으로 돌아와서 밥을 먹은 뒤 그림책을 다시 기획한다. 어찌 저찌 만들었던 그림책을 제대로 가다듬고자 한다. 독학으로 그림책 기획부터 출판까지 했던 유튜버의 응원에 힘 입어 스토리를 다듬는다. 역시 독학에는 책이 짱이다. 그림책 제작 관련 전문 서적에서 힘을 얻어 이야기를 다시 짜고 스토리보드를 구상할 것이다.


이렇게 하루를 글자로 나열하니 뭔가 열심히 하는 삶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사람의 하루는, 인생은 그저 마냥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다.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 한다는 것은 타인의 오더에 움직이던 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 길도 쉽게 잃고 더 많이 좌절한다. 하루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멍하니 흘러간다. 나를 찾지 않으면 긴 시간 나를 잃는다.


그렇게 나를 의식하는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타인에 의해 움직이고 시선을 의식하며 지내던 내 모습이 조금씩 자취를 감춰가며 나를 깨운다. 하지만 이러다 또 좌절하며 움츠러들지 모른다. 그럴 때를 위해 지금 계속 나를 깨워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해야 한다. 그저 오늘을 묵묵히 살아가자고.


내일은 조금 더 일찍 일어나야겠다. 브런치 글이 왜 안 올라오냐고 말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하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