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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은 도구가 더 재미있다 (색연필 편)

빈수레가 더 요란한 법

by 풍요

유급 노동자에서 자발적 퇴사자가 된 이후 통장을 텅장으러 만드는 주범이 있다. 그것은 미술도구다.

미술의 세계는 무궁무진해서 알면 알수록 새롭다. 그리고 미술의 역사는 동굴 벽화가 남겨진 원시 미술부터 현대의 아이패드 프로크리에이트 앱까지 엄청나게 유구하다. 그만큼 좋은 재료들이 어마하게 많다.


사실 알고 있다.

진짜 전문가들은 단출한 도구로도 훌륭한 그림을 그린다. 빈수레가 더 요란하지 않는가. 인정하면 편하다. 나는 빈수레고 재료 욕심이 많다.


나는 주로 색연필, 수채물감, 연필로 그림을 그린다.

얼떨결에 만든 그림책이 전부 색연필화였기 때문에 넓은 배경을 그릴 때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서 고안한 재료가 수채화였다. 넓은 배경을 조금 쉽게 그리고자 했던 잔꾀가 요즘 그림 그리기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다행히 나는 도구를 모셔두지만은 않는다. 그냥 두기에도 내 기준으로 매우 영롱하지만, 미술 재료는 비싸므로 악착같이 써줘야 한다. 쓴 만큼 그림 실력이 비례해준다면 더 열심히 쓰고 싶다.


위 색연필은 가장 대중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가격은 대중이 등 돌릴만 한 수채 색연필이다. 다들 파버 카스텔 사의 알버트 뒤러라고 부르는데, 스펠링을 자세히 보면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그냥 알버트 뒤러라고 부르기로 한다.


오랜만에 애증의 색연필화를 그렸다. 손날이 종이에 계속 마찰되어 반들반들해질 때까지 색연필을 칠하면 그림이 완성된다. 색연필화는 선이 깔끔하면서도 비교적 쉽게 음영을 넣을 수 있다. 부드러운 분위기의 그림을 그리기에 좋다.


오늘 광화문 교보문고를 들른 김에 색연필화에 적합하다는 제도지를 샀다.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지만 결과물이 어떨지 궁금하다. 귀여운 동물 친구들 털 표현이 좀 더 부드럽게 되려나? 무엇이던 그려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음이다. 핑계 대지 말고 오늘은 그림을 그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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