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사가 무너지는 과정

퇴사 D+7

by 정의로운 민트초코

"요즘 취업 시장이 진짜 안 좋은데... 아니다, 너 같은 애들은 취업 잘해. attacker잖아."


퇴사 면담은 생각보다 별 거 없었다. 이전 직장을 퇴사할 땐 네 시간 마라톤 면담을 하며 눈에 실핏줄이 터졌는데, 상사가 바쁜 덕분에 유선으로 깔끔하게 퇴사면담을 마쳤다.


퇴사를 일주일 남겼을 무렵, 대표와 짧은 면담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승부사니까. 너 같은 애를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얼마 안 되는 월급 받고 일하는 주제에, 모든 게 내 책임이라 생각했다. 회사 생활을 하는 내내 그놈의 인정이 너무 받고 싶었다. 승진이 하고 싶었고, 우수 직원상을 받고 싶었다. 작은 실수에도 스스로를 과하게 비난하고 의심했다. 누군가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할까 전전긍긍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싫었다.


나는 아주 오래, 많이 일했다. 거의 대부분의 일은 내일 해도 되는데, 내일 한다고 하늘이 두 쪽 나고 세상이 망하는 게 아닌데, 나는 일을 미루면 지구가 멸망할 듯이 기한을 맞췄다. 그렇게 일은 또 생기고, 계속 늘어났다. 유일한 도파민은 업무 성과뿐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무너졌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인정과 보상이 돌아오지 않을 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이 내 책임과 무능으로 돌려질 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까 봐 홀로 동동거리는 시간이 길어질 때, 천천히 지쳐갔다.


퇴사를 하던 그 주, 우리 팀은 사업 실적을 초과 달성했다. 어쩔 수 없이 도파민이 터졌다. 뿌듯한데 허탈했다. 팀이 실적을 달성 못할까 봐 불안하지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던 상사, 실적을 달성하건 말건 별 생각 없는 부하 직원 모두와 성과를 달성한 기쁨을 나누고 격려했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느라 힘겨운 회사 생활이었다. 과한 책임감, 인정욕구, 경쟁심이 버무려진 나라는 사람을, 더 이상 회사가 써먹게 두고 싶지 않았다. 이제 사업은 그만 돌보고, 내 에너지를 나를 돌보는 데 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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