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D-7, 인생을 수습하려 합니다
쌩퇴사 후 한 달 즈음 지날 무렵. 그 사이 일본, 영종도, 속초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고, 퇴직금이 들어왔고, 건강보험이 지역가입자로 전환되었다. 퇴사 후 한 달 정도는 늘 밤 10시에 잠이 들고 새벽 6시에 눈을 떴다.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생각했는데, 야근을 안하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퇴사 후 마냥 후련하고 즐거운 시기는 아주 짧았다. 맘 편히 빈둥거리고, 여행이라는 도파민에 절어있는 순간에도 불안감은 불쑥 솟아왔다. 입국신고서 직업란을 뭐라 적을 지 애매했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를 뭐라 소개할 지 허둥거렸다. 소속 없는 인간으로 세상에 떨어진 느낌이 생경했고, 지인 결혼식은 괜히 가기 싫었다. 통장 잔고 줄어드는 속도는 생각했던 것보다 빨랐다.
전 직장 동료이자, 이전에도 함께 일했던 선임은 내게 물었다. "원래 그렇게 쌩퇴사를 해요? 예전에도 이직 확정 안되고 퇴사하더니 이번에도..불안하지 않아요?" 아직 젊고 모아둔 돈도 있어서 괜찮다며 웃어 넘겼지만, 미래가 결정된 바 없이 퇴사하는 걸 만류하는 이유가 있다. 퇴사 후 종종 생각했다. 아, 내 인생을 수습해야 한다.
돌이켜보니 나는 직장인일때의 내 모습을 좋아했고, 노동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아침 출근길 엄마의 배웅을 받고, 어쩌다 마주치는 이웃들과 인사 나누는 게 좋았다. 나는 정장을 입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고 걷는 걸 좋아했고 그 차림새로 저녁 술약속에 가는 게 좋았다. 요즘 뭐 하냐는 친구나 부모님 지인의 물음에 '그냥 회사 다닌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좋았다. 내가 번 돈으로 내게 필요한 것들을 구매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밥이나 선물을 사주는 게 좋았다.
그 돈을 좀 덜 고통스럽게 벌 수 있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직장인일 때 내 모습을 좋아했지만, 직장에서의 시간을 좋아하진 않았다. 퇴사에 일말 후회 없지만, 기약없이 노는 것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었다.
(TIP : 퇴사 후 불안함이 몰려올 때, 내가 하기 싫었던 일과 상황을 생각하면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
퇴사 후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무렵, 예전에 함께 일한 상사의 추천으로 이력서를 내고, 두 번의 면접을 봤다. 단기 아르바이트도 며칠 했다. 그리고 정확히 퇴사 2개월 만에 이직을 하게 되었다.
퇴사를 후회한 적은 없지만, 이제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 지 종종 고민했다. 더 놀아도 된다는 지인들의 말은 위로가 되었지만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 결국 퇴사 두 달만에 다시 직장인이 될 예정이다. 감사한 기회라는 마음 반, 조금 더 빈둥거리고 싶다는 마음 반. 새로운 공간에서의 적응은 나이를 먹을수록 어렵다. 그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도록 남은 일주일 정말 야무지게 놀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