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도 일도 언제 쉬워질까요
요즘 드럼 레슨에선 기본 리듬만 주구장창 치고 있다. 오랜만에 카피곡을 받았지만, 내 연주를 2주 정도 들어본 선생님은 뭔가 결심한 듯 음악을 껐다.
안 되겠어. 지금 이걸 할 때가 아니야.
음악을 듣고 그냥 신나게 놀아보라던 선생님은, 메트로놈을 켜고 기초적인 리듬을 조금 빠르게 변주해 연습해 볼 것을 권했다. 약간의 변주가 들어가고 속도가 조금 빨라졌을 뿐인데 버벅거린다. 나름 기초는 탄탄한 편이라 자부했지만 실력이 들통난다.
하루에 5분도 연습을 안 하는구먼.
정확하다. 역시 선생님은 프로다. 조금이라도 드럼 연습을 하겠다며 침대 위에 연습 패드와 스틱을 두는 시도까지는 해봤다. 며칠 만에 걸리적거린다며 치워버리고, 단 1분도 연습하지 않고 레슨일이 돌아오는 날이 허다했다.
분명한 건, 나는 드럼을 좋아한다. 아니고서야 매 월 16만 원의 레슨비를 내며, 일주일에 하루라도 학원에 갈 일은 없지 않은가. 이토록 드럼을 좋아해도 하루에 5분도 연습하지 않을 수 있다. 선생님이 제발 그거 하나만큼은 알아주길 바란다.
새로운 직장에서 잔뜩 버벅거리고 학원에 온 날, 선생님은 기본 리듬을 연주하는 나를 보며 혀를 찼다.
전다, 절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드럼을 배우고 밴드를 했으며, 2024년부터 지금까지 드럼을 다시 배우고 있는 나. 2021년 인턴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최근 2개월 휴식기를 거친 뒤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한 나. 서럽고, 민망하고, 지치고, 어이없는 마음에 외친다.
아, 일도 절고 드럼도 절고 미쳐 버리겠어요!
기본 리듬에, 빠른 속도로, 적절히 기교를 섞는 선생님의 연주는 흔들림 없이 편안하다. 누가 뭔가를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이면 그 사람은 엄청난 고수라 했던가. 내 연주는 내가 들어도 조급하고 불안하며, 연주하는 나도 확신이 없다. 중간중간 멈칫하는 게 느껴진다. 몇 마디 안정적으로 하는 것 같아도 오래 연주하면 반드시 멈칫, 버벅거린다.
기본 리듬을 빠르게 연주할 수 있고, 자연스레 기교를 섞을 줄 알며, 그 리듬을 오래 흔들림 없이 연주할 수 있는 프로. 장비 탓, 환경 탓 없이 그냥 언제 어디서나 잘하는 프로. 언젠가 한 분야에서 나는 스스로 프로라 자신할 수 있을까.
마냥 쉽게 즐기는 것 같은 프로에게도 아마추어 시절은 있었겠지. 그리고 아주 지난한 시간을 버텨 프로라 불리겠지. 그리고 오늘도 그 시간을 통과하고 있겠지. 드럼은 아마추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도, 돈 받고 하는 일은 적어도 아마추어여선 안된다고 다짐한다. 드럼 연습은 하루 5분도 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하루 최소 8시간은 일터에 앉아있지 않은가.
그 주엔 2박 3일 지방 출장이 예정되었다. 선생님은 여행을 갈 때도 드럼 스틱을 챙기고, 짧게 손이라도 푼다고 했다. 이번 주는 내내 출장이라고 말하는 내게 선생님은 말한다.
드럼 스틱 가져가, 새꺄!
일터에서 프로이기 위해 드럼 스틱은 집에 놓고 왔지만, 출장지에서 버벅거리며 선생님을 생각한다.
선생님, 저는 지금 이직한 지 일주일 된 일터에서, 이미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 중도 합류하여, 여러 사람과 처음 호흡을 맞추며 일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구조와 히스토리도 파악해야 하고 실무를 하기도 바쁜데요, 새 직장이라 전자결재 시스템, 타 부서 업무 협조 절차까지 달라요. 그 프로세스를 파악하느라 업무 속도가 더뎌서 속상하네요. 참고로 전 지금 출장 중인데요, 장소는 무려 제주도입니다. 듀얼모니터가 아닌 작은 제 노트북으로 일하던 중 선생님이 생각났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조건에서도 프로시겠지요. 공연장에선 선생님의 드럼이 아닌 공연장에 세팅된 초면인 드럼을 치시겠죠. 어떤 녹음에선 선생님의 밴드가 아닌 새로운 뮤지션들과 호흡을 맞추시겠죠. 저가 드럼이라도 직접 조율하여 훌륭한 소리가 나도록 만드시겠죠. 그리고 흔들림 없는 연주를 해내시겠죠. (비록 툴툴거리고 화를 내실 수도 있지만..)
일은 늘 쉽지 않지만 자세를 다잡고 일하겠습니다. 그렇게 레슨비를 벌고, 다음 레슨 때 뵙겠습니다.
- 드럼은 절지 몰라도 일은 절지 않는 제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