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바라보라1 #7
청교도들은 성경의 진액을 기가막힌 비유로 풀어내는데 탁월했다. 판사와 악당을 비유를 봐도 주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1.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을 보증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의 빚을 그 아들에게 전가시키셨을 때 하나님의 아들을 조금도 아끼지 않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벌을 최소한으로 약화시키셨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몇 십 억의 피조물을 심판하실 때보다 공의를 더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다.
한 악당이 판사 앞에 나왔다고 해보자 판사는 악당을 봐주지 않을 것이다 대신 법에 따라 판결을 내릴 것이다. 그것은 판사가 공의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만일 판사가 자신의 아들이 범법자이고 그 아들을 조금도 봐주지 않는 모습을 온 세계가 본다면 그 판사는 다른 수천 명을 재판할 때마다 그 일로 인해 더 공의를 높인다는 것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수천 명을 영원히 고통당하도록 지옥으로 던지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공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죄를 지고 하나님이 그 아들을 전혀 봐주지 않으실 때 그것을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롬 8:32) 그것은 분명 온 세상이 심판 받을 때보다 하나님이 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더 강력히 선포할 것이다.
2. 죄인이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 하나님의 공의는 단지 만족된 것뿐이지 결코 온전히 만족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내신 방법은 그분의 공의를 만족시킬 뿐만 아니라 온전히 만족시키신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채권자라고 가정해 보자 채무자는 만 파운드의 빚을 졌다 . 가난한 그가 지불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금액은 하루에 페니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채권자가 그를 마지막 동전 한 닢까지 다 갚도록 감옥에 가둔다고 해 보자. 그런 경우 채권자는 빌려준 돈을 매일매일 받고는 있지만 채무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결코 그 빚을 다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부자가 와서 만 파운드를 한 번에 내놓는다고 해 보자. 그렇게 되면 채권자는 즉시 모든 빚을 돌려받는 것이 된다. 죄인들에게서 직접 공의를 만족시키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공의를 만족시키는 하나님 사이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죄인에게 오셔서 형벌의 빚을 요구하신다. 죄인이 순종의 빚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인을 감옥에 던져 버리신다. 그러나 죄인이 지불할 수 있는 최대한은 겨우 말하자면 하루에 동전 한 닢밖에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난한 죄인은 여전히 빚을 갚아야 하고 그 일은 영원히 계속되어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지옥에서 영원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형벌의 근거가 바로 그것이다. 유한한 시간속에서 그들이 결코 빚을 다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빚을 한 번에 완전하게 갚아 주신다. 그러자 정의가 말한다 "나는 충분히 가졌다. 나는 만족한다. " 그리고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공의를 더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영원 전부터 하나님이 품고 계셨던 모략이다 하나님이 그분의 사랑과 선하심을 위해 길을 내시는 동시에 그분의 진리와 공의를 만족시키는 방법을 찾아내신 것이다. 오 내 영혼아. 그 경이로운 모략을 생각하며 놀라움 속에서 경탄하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그 방법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그 긍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가 높임을 받으신다. 그렇다. 네가 심판을 받을 때보다 구원받을 때 하나님의 공의는 더 높임을 받고 영광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