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과 통합 문화 솔루션
매우 감성적이고, 매우 과학적이다. 이런 특징을 가진 '문화', '취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접근성이 좋고 대중화되어 있는 면에서 커피 문화 만한 것이 없어 보인다. ‘커피는 과학이다’라는 책이 있는가 하면 ‘커피의 역사적 의미’를 다루는 책부터 커피를 매개체로 이어지는 사랑이야기를 다룬 소설도 있다.
마시다 만 커피 한잔이 놓여 있는 프로그래머의 책상 이미지나, 찐한 커피를 마시며 원고를 작성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 모두 어색하지 않다. 그야말로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문화일지도 모른다.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디자이너와 개발자 사이의 갈등'이나 '영업팀과 기술팀의 갈등' 같은 이야기들은 실제로 자주 경험하는 부분이다. 기본적으로 업무가 다르기 때문에 오는 갈등이겠지만 그 기저에는 전공에 따른 사고방식의 차이도 적지 않게 깔려 있다.
이야기가 안 통하는 답답한 회의 시간이 될지는 몰라도 회의가 끝나고 갖는 커피 한잔하는 시간은 좀 다른 분위기가 되는 것 같다. 어차피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는 동료가 되고, 흔히 말하는 한 배를 탄 사람들이 된다. 커피 안 드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래도 평균적으로 커피는 화합을 이끌어내는 좋은 매개체가 아닐까? 과한 칭찬일 수는 있겠다. 그래도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우리나라에서의 카페인 파워는 산업 전반의 원동력으로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한다.
웬만큼 직원들 생각하는 회사치고 커피에 신경을 안 쓰는 회사는 없을 정도이다. 그중에는 신경을 정말 많이 쓰는 회사도 있다. 이 정도라면 직원들에게 있어 커피의 중요성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https://blog.toss.im/article/toss-coffeesilo-interview
한편 ‘커피 복지'라는 말을 써가면서 그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기사도 있었다.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fb4cf32c5b664958c7c0f97
커피를 잘 몰라도 커피를 잘 알아도 어찌 됐든 즐길 수 있는 그런 점이 커피의 매력이다.
직장에서 공통 관심사를 진지하게 만들어내기란 부담스러운 일이다. 부담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중에 '커피'가 있다. 비슷하게는 '술'이야기나 '드라마' 이야기가 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왠지 놀고 있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커피는 비교적 좀 가볍고 카페인 파워로 일을 열심히 하려는 이미지도 있다 보니 좋은 소재가 되어 준다.
요즘 사실 핸드드립에 푹 빠져가고 있다. 옆자리 계신 분이 핸드드립의 고수여서 그분이 내려주신 커피를 맛보다가 보니 자연스레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당연히 거치게 되는 커피콩의 종류와 산지에 따른 맛과 향의 차이가 점점 구체화될 무렵, 우리의 이야기는 커피 입자의 ‘입도분포(커피를 갈았을 때 입자의 크기 분포)로 흘렀다. 뜨거운 물에서 커피 알갱이로의 열전달이 잘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니 천상 이공계스러운 드립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함께 자리하고 있던 다른 분의 커피콩을 판매하는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구매해본 다양한 로스팅 업체들을 듣게 된다. 이번엔 카페인의 섭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카페인 과다 섭취의 위험성과 적절한 섭취의 유용성이 이야기된다. 빠질 수 없는 이야기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대한 경험담과 추천들이다.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어느새 이야기 나누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시작된다. 구수한 사람, 산미가 있는 사람, 묵직한 바디감이 있는 사람임을 알아가게 된다. 즐거운 일이다.
내년에는 부서를 초월한 커피 동호회를 만들 계획이다. 커피도 알아가고 사람도 알아가는 향기로운 시간을 기대하고 있다. 이쯤 되면 커피에게 참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고 싶어 진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드는 나의 원두는 60여 가지의 좋은 아이디어를 가르쳐 준다
-베토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