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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고 눈부신 세상

언젠가는 흐려진다.

by 글치

謹弔+기

지하철에서 스쳐 지나가시던 할아버지는 근조기가 들어 있는 상자를 힘겹게 끌고 가고 계셨다. 무거워 보였다. 실제 무게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무거워 보였다. 남아있는 힘에 비해 무거운 무게를 끌고 가시는 것 같았다. 먼저 간 친구에 대한 무거운 마음일까? 남은 시간에 비해 많은 후회들의 무게일까?

언젠가는 나도 겪을 일이다. 그땐 디지털 근조기가 나올지는 몰라도 죽음과 가까워지는 흐름이 인생의 방향임은 부인할 수 없다.


요즘 들어 부쩍 ‘노인이 된 나’를 상상한다.

스마트폰을 많이 봐서 그런가. 직업상 모니터를 많이 봐서 그런가. 눈이 흐려진다는 느낌이 들고 있다. 이렇게 점점 흐려져 가겠지.

시간이 갈수록 귀가 어두워져 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알게 된다. 점점 안 들리겠지.

이웃집 할아버지 한 분이 올해 들어 많이 기력이 없어 보이신다. 낮에 기력 없이 골목에 앉아 계실 때가 많은데, 그분은 작년까지 골목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시던 분이다. 지금은 의자에 앉아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 궁금해졌다. 해가 떠있는 시간 동안 주로 앉아 계시는데, 시끄러운 소리나 눈앞의 광경에 크게 관심이 없어 보이신다.


늙어 간다는 것은 외부 자극으로부터 둔해지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젊음은 많은 자극을 느끼고 신경 쓰며 살아가게 해 준다. 남들을 보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도 관심 갖게 되는 게 젊음인가 보다. 늙어지면 남들이 안보이기 시작하고, 남들의 말이 안 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서 자유로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이다.


남는 것은…

기꺼이 나를 위해 큰 소리로 말해주는 사람의 말과 내가 나 자신에게 해주는 말뿐일지도 모른다. 글을 읽고, 말을 듣는 것도 한정된 계약기간이 있는 것 같다. 계약이 끝나면, 그동안 들은 것과 읽은 것으로 잘 생각하며 정리하는 시간으로 접어들지도 모른다. 그 시간은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다.


그때의 조용함이 기대되는
삶을 살아가야겠다.
지금의 시끄러움과 눈 부심을
감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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