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변해가는 것들이
부담스러워지면
어른이 된 걸 거야
나름대로 20대에는 얼리어답터 소리를 들으면서 살았다. 스마트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PDA폰을 쓰기도 했고, 아이패드 1이 나왔을 때부터 사용하기도 했다. 남들이 다이어리 쓸 때 애플 펜슬이 없던 시절에도 필기를 했었다. 빠르게 변해가는 모든 것들을 빠르게 따라다녔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느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빠르고, 더 빨라지고 있다. 나와 세상사이의 속도 차이가 점점 커지면서 놀라는 일도 생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처음 무인점포를 봤을 때 느껴지는 이질감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더 편리한 삶을 위한 것들이 감정적인 불편함을 주는 일이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 그만큼 내가 변화를 못 따라가고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실버서퍼’라고 불리는 고령층 얼리 아답터 분들도 등장한 지 오래되었지만 변화의 속도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환경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삶의 전반에 걸쳐 변화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손가락에 전화기를 이식하고, 인공지능 아나운서가 전하는 뉴스를 들으며 메타버스에 출근하고, 가사 도우미 로봇이 차려주는 저녁밥을 먹는 삶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면, 나는 한동안 이질감에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다. 결국 적응은 하겠지만 적응이 되었을 시점에는 또 다른 변화들이 찾아올 것이다. 빠른 변화가 부담스럽다.
내가 더 빨라질 수도 없고, 세상을 붙잡아 둘 수도 없다. 결국 나는 나의 속도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진짜 바꿔야 할 것은 나의 적응속도가 아니다. 느림도 빠름 만큼이나 가치 있음을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더 이상 빠른 적응력을 자랑하고 싶지 않아 졌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너무 느리게 진행돼서 변화가 없어 보이는 것들을 자랑하고 싶다. 우정이나 의리, 사랑 같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짧은 순간에 만들어지기 어렵다. 만들어진다고 해도 깊어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쌓여야 한다. 느리게 만들어진 퇴적층을 보기 위해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여행을 가는 것을 보면, 빠른 변화의 매력 못지않은 느린 변화의 매력이 존재한다. 이제는 천천히 쌓이는 ‘느리지만 큰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진다. 그래서 오늘도 한 글자 한 글자를 화면에 쌓아본다. 지층을 구성하는 것이 한 알의 흙인 것처럼 삶의 역사를 구성하는 한 글자를 소중히 쌓아 가야겠다. 그렇게 시간을 쌓아가고 대화를 쌓아가고 마음을 쌓아가면 내가 없어져도 남아 있을 멋진 퇴적층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빠르진 않지만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