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쩌면 행복은 통제불능

Everything is under control?

by 글치

사고 발생

둘째 아이가 상자들을 쌓아서 사다리 삼아 높은 곳을 올라가는 시도를 했다. 벽 찬장에 있는 간식을 꺼내려는 시도였다. 아이는 실패했고 떨어지면서 싱크대 모서리에 부딪쳤다. 나와의 거리가 1미터도 안 되는 곳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큰 애와 옥신각신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둘째 아이는 갈비뼈 하단에 멍자욱이 흐리게 생겼다. 나는 화가 났다. 화의 대상이 아이인지 나 자신인지도 구분이 어려웠다. 통제되지 않는 이 상황들이 나를 답답하고 속상하게 했다는 것만 분명하다.


아이들은 정적인 존재가 아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다치고도 여전히 틈만 나면 새로운 시도를 한다. 두 손 놓고 킥보드 타기, 계단 뛰어내리기, 서랍장에 등산하기, 열대어 낚시하기, 화장실 청소하기(자기만의 방법으로)… 갈수록 아이들이 동적이 되다 보니 모든 상황이 통제되지 않을 때가 자주 생긴다. 돌발행동으로 위험한 순간도 몇 번을 마주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정적인 편이었다. 하루 종일 대문 앞에 앉아 골목길에서 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놀이를 하곤 했다. 적극성, 능동적, 도전, 사교성 이런 단어들이 주는 압박을 느끼며 사춘기를 보냈다. 어쩔 수 없는 사회생활의 요구에 지금의 적절한 영업력이 생겼다. 하지만 내면의 어려움과 스트레스는 적지 않았다. 동적인 우리 아이들이 나처럼 자라지 않아서 한편으로는 보기 좋다. 때로는 부럽기도 하다. 생각을 바꾸니 아이들의 도전 정신을 구경하면서 행복감이 찾아온다. 통계적으로 사고는 정적이어도 일어난다.


행복은 통제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통제하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자. 행복과 통제는 큰 관련이 없을 수 있다. 아니 어쩌면 행복은 통제하에서는 커지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아빠가 모든 상황을 간단히 통제하는 방법은 사실 어렵지 않다. 크게 화를 내거나 그와 비슷한 행동으로 모두를 ‘정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everything is under control. 주변은 아주 조용해진다. 움직이던 이들도 계속 움직여도 되는지 고민하는 눈치이다. 그리고 나의 마음은 평안을 얻는다. 그 평안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면 좋은 아빠가 되긴 어렵다.

어쩔 수 없는 통제들 속에서 살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여행을 가는 이유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통제되지 않는 환경 속으로 일부러 들어가는 것일지 모른다. 여행 계획을 꼼꼼히 세우는 사람도 많지만, 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가 통제는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때와 갑작스러운 통제 불능의 상황은 복잡하게 엮여 있다. 인생의 행복은 계획적인 계획의 통제적인 통제로는 다가가기 어려워 보인다. 어쩌면 이미 다가와 있던 행복을 잘 통제해서 가둬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행복은 통제불능일지도 모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떻게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