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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치 Feb 06. 2023

내 말을 들어!

아빠도 들어

아들내미의 자아형성 시기인 건지 말을 도무지 듣지 않는다. 타이르고 설명하고 갖은 방법을 다 쓰다가 한마디 던졌다. 그래도 꼭 껴안아주면서 부드럽게 말하려고는 했다.


‘아빠는 아들이 아빠말 잘 들었으면 좋겠어.’

돌아온 대답이 의외였다.


응 나도 아빠가 내 말 잘 들었으면 좋겠어.
2022.05.04

말을 잘 따르라는 의미로 말했지만, 아들은 경청의 의미로 이해했고, 내가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을 꼬집어 줬다. 따끔하다. ‘들어라! 들어라!’ 그렇게 많이 읽고 써도 실상은 ‘듣지 못함’이었다.

아~여전히 나는 듣지 못하고 있구나. 내가 잘 듣지 않는 것을 아들도 잘 알고 있었다. 듣기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는 행위인데, 이렇게 완성이 어렵다. 완성은커녕 따로 신경 쓰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퇴화한다. 어쩌면 그런 현상이 몸에도 반영되어 노화의 방향이 잘 들리지 않는 쪽으로 가는 것일지 모른다. 이제 좀 들어보려고 할 때, 그런 마음의 여유와 성찰이 생겼을 때는 쉽게 듣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아픔이다. 사람은 말을 줄여야만 들을 수 있다. 잘 못 듣는다는 건 필요이상의 말을 하고 있어서 이다.

말이 많다는 것은 할 말이 많다는 증거가 아니라 게을러서 하고자 하는 말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말을 찾지 못했다는 증거다.
‘침묵이라는 무기’
-코르넬리아 토프




아직은 아들에게 용기 내서 물어보지 못했다. 충분히 나아지지 않았음을 나도 알기에.

‘아들, 아빠가
요즘엔 잘 듣는 거 같아?’


오늘 밤 한번 살짝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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