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의 것들
운전면허를 늦게 딴 편이다. 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대학원 내내 자전거를 주로 타고 다녔다. 회사에 들어가서도 어떻게든 대중교통으로 통근을 해냈다. 첫 직장이 경기도였기에 서울에서 출근하는 길은 그리 녹록하진 않았다. 눈이라도 오면 지각은 당연하고 오전이라는 시간에 회사에 도착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야 했다. 그러다 회사가 좀 더 외진 곳으로 이전을 하게 된다. 이번에는 대중교통이 거의 불가능한 곳이었다. 드디어 차가 필요해졌고, 운전면허도 필요해졌다. 부랴부랴 면허를 따고 2주 만에 차를 구입했다.
경차를 생각하고 가서 아우디 사 오진 않았지만, 경차를 사려고 하다가 좀 커지기 시작해서 7명까지도 탈 수 있는 차를 사게 되었다. 혼자 출퇴근하기엔 넓은 ‘공간’이었다.
처음 면허를 땄을 때는 운전하면서 무언가 다른 행동을 곁들인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3-4시간 운전해서 출퇴근을 하다 보니 차라는 공간은 점차 다목적화되기 시작했다. 음악을 듣는 건 기본이고 밥도 먹고 책도 읽고 음성인식을 활용해서 글을 쓰기도 했다. 차는 점점 나만의 공간과 시간이 머무는 특별한 것이 되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받는 일이 생겼을 때, 자취방으로 안 가고 어딘가로 방향을 바꾼다. 석양을 보기도 했다. 흐르는 물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냥 도넛 하나 사 먹고 차에서 자버리기도 했다. 차박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이었지만 자연에 가서 잠을 자고 오기도 했다. 뒷좌석을 접으면 평평해지는 공간에 에어메트를 깔고 침낭도 항상 챙겨두었고 캠핑의자와 버너에 갈수록 뭔가가 늘어가는 상황이었다. 점점 이상해지는 차 내부였는데 그 모든 것은 연예를 하면서 싹 정리되었다.
결혼 후 차는 더 이상 나의 공간이 아니고, 아이들의 놀이터나 본래 목적인 이동수단에 불과해졌다. 가끔은 자유로운 방랑시절의 차, 그 공간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젠 차에서 자면 여기저기 쑤실게 뻔하고, 가족이 함께하는 기쁨이 생겼으니 된 것 같다.
좀 더 큰 차를 사서 몸이 안 쑤시는 차박을 하는 것도 생각은 해보지만 그것도 또 하나의 다른 세계라 선뜻 용기는 나지 않는다.
나의 30대 초반,
위로와 안식을 주던
첫차에게 감사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