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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치 Mar 30. 2023

모가 나야 정 맞을 기회가 온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처음 이런 류의 속담을 들었을 때는 꽤나 어렸을 때였다. 하지만 매우 인상적이었다. 일단 정을 맞고 싶지 않았고, 정을 맞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정을 맞으면 아플 테니까 피하고 싶었다. 어린아이가 보기엔 정이 무섭게만 생겼었다.


어른이 되어 보니 정을 통해서 깎인 돌은 예술작품이 되기도 하고, 건축이나 토목용 자재가 된다거나 뭔가 쓸모 있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을 맞을 기회가 자주 오지 않음도 알게 되었다. 정을 쓰는 사람도 본인의 에너지를 아무 돌에나 쓰고 싶지 않다. 정을 드는 일은 그 사람에게 정(情)이 있을 때 가능하다.


정에 맞을 때는 잘 모른다.

안 좋은 ‘모’를 깎아주고, 뛰어남으로 인한 ‘모’는 잘 살려주는 그런 석수장이를 만나는 것은 인생에 있어 하나의 축복이다. 당시엔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지나고 보면 그런 분들이 나를 조각해 주신 멘토 들이었다. 당시에는 ‘왜 때려!’ 하는 마음뿐이었고, 나를 향한 갑질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그게 맞아? 확실해?

발표를 할 때마다 교수님은 늘 그렇게 말하셨다. 듣는 순간 머릿속은 하얘진다. 나마저 나를 의심한다. ‘이게 맞나?’

그건 네 생각이고!

이쯤 되면, 이제 더 이상 발표를 해봐야 소용없다. ‘다시 준비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내 책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뭐가 잘못되었는지 생각한다.

눈물도 흘렸고 화도 났다. 계속 반복되던 실패가 쌓인 어느 날, 교수님을 설득할 방법은 논리와 근거 그리고 나의 자신감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럴싸해 보이기보다 논리와 근거를 주로 준비했다. 다음 발표에서 나의 대답은 달라졌다.

네, 이게 맞습니다.

교수님은 뭐라고 하시지 않았다. 잘 되어가는 것 같으니 더 발전시켜 보라고 하셨다.


돌은 웬만하면 모가 나있다.

모가 없는 돌은 강가나 바닷가에 있는 매끈한 돌들이다. 정을 맞은 것은 아니지만 아주 오랜 세월 마모 되어 모가 사라진 돌들이다. 이런 돌들은 이미 하나의 조각품처럼 아름다워 보인다. 절대다수의 돌들은 모가 나 있다. 얼마나 더 모가 났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공학적으로는 ‘모남정도(angularity)’라는 용어로 정의하기도 한다. 모남정도는 선천적이다. 감추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과감하게 드러내서 정을 맞는 용기가 필요하다. 작품이 되기 위해서!

모는 성품적인 모일 수도 있고, 좀 모자라는 부분일 수도 있고, 어떤 부분이든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게 유익한 부분일 것이다. 달고 사는 것은 장기적인 고통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제 정을 들고 있는 석수장이에게 소리지르자.

여기 모가 난 돌 있습니다.
한방 쳐주시죠.


그러면, 자신도 모가 났으면서, 정을 피하고만 사는 많은 돌들이 욕하거나 험담을 할 것이다.

어이구 모난 돌이 정 맞는다니까…

아마도 그들은 정 맞은 후의 멋진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황홀한 조각품을 보면 보통 나오는 감탄사가 그렇지 않은가.

이게 돌로 만든 거 맞아?


AI가 그려준 모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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