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중소기업이다. 08
학교를 떠나 회사를 갔는데, 생각보다 학교 갈 일들이 자주 생겼다. 학교를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는데, 회사에서 학교로 출장 갈 일이 생기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상한 일이다.
학교에 있을 때는 참 의미 없는 시간이라 생각한 적도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이런 연구들이 과연 가치가 있을까? 의문을 품기도 했다. 결국은 그 연구들이 크고 작게 어떤 결과물이 되어 의미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연구에 대한 몫은 학교가 담당하게 되는 것 같다. 회사에서도 특히 당장 돈이 안되거나 시간이 많이 걸릴 일들, 쉽게 원인이 분석되지 않는 일들을 주로 맡겼다.
그렇게 나온 논문들도 때로는 폄하하는 말들을 듣기도 하지만, 일정 수준이상의 논문들은 저마다 밤을 새우며 연구한 연구원들의 노력의 결과들이다. 그들과의 협업은 그 나름대로 의미 있을 일이 될 수 있다.
회사에서 학교로 출장을 갈 때의 이유는 세 가지 정도였다.
업무와 관련된, 우리 회사 제품이나 공정과 관련된 기술세미나에 많이 참석했다. 당시 많이 지원해 주고 허락해 준 회사에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이런 경우, 꼭 사내 지식전파를 위한 보고서를 쓰게 된다. 가급적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종종 쓸 내용이 막막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주최 측에게 자료를 요청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대기업이 아니다 보니 인재확보가 쉽지 않다. 공채와 같은 방법도 있지만, 같이 협업하는 연구실이나 기관의 학생 연구원은 좋은 잠재적 후보군이다.
그래서 비록 회사가 갑인 경우의 협업 관계라고 해도, 실무를 하는 연구원들에게 잘해줄 필요가 있다. 실제로 회사에 관심을 갖는 경우도 꽤 있고, 채용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서로 직무와 분야에 대한 공감이 형성된 상황이기에 이후의 실무가 원활한 편이다.
글머리에서 언급했듯이 사내 인프라와 연구팀으로 진행하기 어렵거나 혹은 장기적 연구의 필요성이 있다면 학교와의 협업도 고려하게 된다. 당연히 이때 가장 많이 참조하는 것은 담당 교수님의 논문 등이 된다. 유사한 연구의 실적을 보고 우리 연구를 맡으실 수 있을지 사전조사를 하고 실제 미팅을 하게 된다.
매번 나는 학교에 과제를 맡길 때 솔직히 아주 매우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왜냐면 엄청난 연구가 단기간에 갑자기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적당한 기대감의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열정적인 연구원과 교수님들은 기대이상의 결과를 가져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느긋한 연구개발은 흑자가 달성되는 호황기나 평화의 시기에나 가능한 일이다. 늘 그렇듯이 적자의 시기에 몰아치는 구조조정의 광풍이 회사에도 불어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학교와의 협업은 뚝 끊겨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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