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야근해
내가 근무하면서 연구소의 소장님은 2번 바뀌었다. 즉 3명을 모신 거다. 변경은 곧 어떤 의미에선 좌천이었다. 3분 모두 나에게는 귀한 교훈을 남겨준 분들이다. 3분은 차례대로 학벌이 점점 좋아지셨다. 처음분은 전문대, 두 번째 분은 4년제, 마지막 분은 박사학위셨다. 마치 회사의 역사와 연구역량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점점 좋아졌다는 기억은 없다. 다만 그때그때 필요한 분이 필요한 역할을 하셨다고 생각된다.
그중 첫 번째 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회사의 개국공신으로서 실무적 경험이 풍부한 분이었다. 비록 연구소장이라는 직무에 어울리는 학력은 아니지만 갖고 있는 경험치는 적지 않았다. 경험으로 지휘할 수 있던 시절에 카리스마로 제품개발의 토양을 마련하셨다. 그러나 후임 연구소장으로 교체되기 전 즈음에는 점차 좋지 않은 모습이 나타났다.
제품이 점점 초소형화되면서 기존의 경험들이 문제해결에 역할을 못하기 시작했다. 점차 연구소장의 조언이나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이제 제품이 고도화돼 가는 만큼 설계와 분석에 대한 기술도 업그레이드되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적극적인 신 기술 도입과 새로운 방식에 대한 도전이 절실하지만 타성에 젖으면 쉽지 않아 진다. 변화의 시점을 놓쳤고 그러한 부족함 들은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무조건 야근이었다. 어느 날 연구소장님 발 업무명령이 하달되었다. 비공식이었지만 매우 공식적이었다.
‘무조건 연구소에 야근 인원이 있게 하라’
그래서 우리는 조를 편성했다. 요일별로 야근조를 만들어서 연구소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는 것이었다. 어떤 일을 하며 야근하는 게 아니고, 놀더라도 오후 9시까지 앉아 있다가 퇴근하라는 지침이다.
편성된 조에 따라 요일이 정해지고 그날은 꼼짝없이 야근을 한다. 그렇게 3달쯤 한 것 같다. 차가 끊어져서 막차를 타거나 같은 조원이신 분께 카풀을 부탁드리거나 하며 보냈다. 원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당연한 결과지만 업무성과도 좋지 않았다. 아마도 여기저기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나왔으리라 추측된다.
점점 힘을 일어가던 그분은 눈에 보이게 자신감이 없어져 보이셨다. 변화하지 못하는 그때가 바로 물러날 때임을 배우게 되었다.
회식자리에서 술을 과히 드시고 권하고 주고받고 하던 시절, 어느 순간 주위를 둘러보니 이미 많이 취하신 연구소장님과 나만 있었다. 다들 어떻게 이렇게 동시에 담배를 피우러 나가고 화장실을 가고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도 없었다.
‘글치야, 내가 이상하지?’
‘아. 아뇨 아닙니다.’
‘나도 내가 이상한 거 알아. 근데 나 옛날에 정말 열심히 했다. 좀 깡패같이 밀어붙이기도 하고 그랬지만. 그땐 그게 잘 먹혔어. 성과도 좋았고. 근데 요즘은 좀 힘들다. 조금만 뭐라고 해도 막 대들고. 그래. 내가 바꿔야지’
‘……’
그 표정과 말투 그리고 느껴지는 진한 고단함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얼마 후 그분을 더 이상 보기 어려워졌다.
그 뒤로 한 조직의 장은 얼마나 외롭고 힘겨운 것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그분들이 다소 이상한 모습을 보여도 직설적으로 대들거나 험담을 하지 않는 편이다. 결국 언젠가의 내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도 늘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