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민애 교수님의 위로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알 것 같았다. 아버지가 누구신지 알 것 같았다. 성이 ‘나’씨인데 이토록 따뜻하고 여운 있는 글쓰기를 말씀하시다니, 생각나는 사람은 단 한 명 ‘나태주‘시인이었다. 그리고 검색해 보니 진짜 그러했다. 에세이를 써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시고, 방법과 효과도 알려 주셨다. 들으면서, 왜 이리 눈물이 나던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듣고 나서 보답해 드릴 게 없어, 좋아요나 꾹 누르고 말았다. 무엇보다 큰 보답은 아마 에세이를 쓰는 일일 것이다.
이 제목에 이끌려 유튜브를 클릭했었다. 아마도 살고 싶었나 보다. 죽어가고 있었나 보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살고 싶은 사람일지 모른다. 살려면 쓰라고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말씀하신다. 세상이 시끄럽고, 온갖 이야기와 소리가 들끓고 있지만, 그 와중에 가만히 생각해 본다. 그러면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찾아갈 수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는 일을 글과 함께 하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문장을 따라가면, 에세이가 써진다는 말이 너무 다정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 둘 떠올리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충분히 글이 되어 나에게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떠올려 본다. 쉽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게 있긴 한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음악을 좋아하나? 음악을 즐겨 들었지만 그건 음악이 좋아서라기보다 음악 없으면 힘들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차를 샀을 때, 좋지 않았나? 좋았었고, 차를 타고 많은 곳을 다녔고, 차박이 유행하지 않던 때에 차박도 하곤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무언가의 대체제로서 역할한 듯싶다. 어떤 아지트였다.
좀 더 어린 시절로 가보자. 한참 이사를 다니기 시작한 국민학생 시절부터는 정말 좋다는 기억을 주는 물건이나 존재가 거의 없는 느낌이었다. 좋다고 느껴진 무언가에 슬픔이나 분노가 물들어 있다. 그 후 사춘기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고, 고등학생 때는 앞날에 대한 걱정을 현실 속에서 느낀 시절이었고, 검은 기억들만 떠오른다.
여행일까?
여행을 가는 것 좋아한다. 비행기를 타고 이국적 환경에 가는 것도 좋다. 설레는 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보다 더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자신이 없다. 오히려 해외여행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로망에 비하면 덜 좋아하는 편이다. 여행 가면 그 동네를 걸어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 길의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따듯함을 주는 행복의 느낌은 아니다.
직장에서의 인정인가?
요즘은 인정받는 편이다. 초년병시절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보다 더 옛날인 대학원 시절에는 내가 도비인지 알았다. 솔직히 도비는 요즘 들어 아이들과 해리포터를 보면서 알게 되었지만, 그를 보고 있자니 대학원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하고 싶은 걸 맘대로 할 수 없으나 그래도 조금씩은 몰래몰래 하면서 언제 자유가 되나 만 그리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직장 생활은 겉으로 보기엔 도비의 생활 정도는 아니다. 인정은 받으니까.
‘아… 인정받는 도비인가?‘
인정받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다. 마치 소셜미디어의 좋아요 같은 그런 삶의 요소이다. 그래서인지 중독적이고 가변적이다. 그나마 브런치의 라이킷은 좀 다르긴 하다. 인정이라는 것은 언제까지나 보장되지 않는 속성이 있다. 그만큼 퍼포먼스를 유지하기 위해 늘 달리고 있어야 한다. 멈추면 쓰러지는 자전거 같다. 그래도 지금은 멈출까 하는 걱정보다 방향이 맞는지 생각해 보는 여유는 있는 것 같다. 인정의 의미로 금으로 된 명함을 받은 적이 있다. 금값이 올랐다는데 봐서 처분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갈 보면, 아주 귀한 무언가는 아닌 것 같다.
향이 그윽한 핸드드립 커피
좋다. 여태껏 생각한 것 중에 제일 좋은 느낌이다. 집에서 여유가 될 때는 꼭 직접 내려서 먹는다. 콩을 갈면서부터 이미 커피를 즐기게 된다. 커피가 다 내려질 무렵엔 온 집안에 향이 가득해진다. 그 느낌이 좋다. 하지만 마냥 좋아만 할 수 없는 것이 커피다. 역류성 식도염에 걸리면서 피해야 할 음식 목록에 검색이 되었다. 적당히 즐겨야 하는 것 중에 하나이기고하고, 엄연히 이것은 어른이 된 증표처럼 먹게 된 쓰디쓴 음료란 점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하기에 부끄럽다. 정확히는 좋아하게 되어 버린 것에 가깝다.
계속해서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따뜻한 기억이 떠올랐다. 외풍이 심해서 연탄으로는 바닥만 따뜻했던 반지하 단칸방. 그리고 한편에 늘 자리 잡고 있던 이불이다. 무겁고 두꺼운 솜이불은 어린 나이에 번쩍 들어 올리기도 힘들었던 기억이다. 이불의 한쪽을 열고 들어가서 누워 있으면 너무 따뜻했다. 이불속에서 손발만 꺼내 놓고 간식도 먹고, 부모님과 텔레비전을 보던 기억도 있다. 다 같이 보던 맥가이버나 A특공대 같은 프로들이 재미있었다. 단칸방이다 보니 늦게 자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이런 프로들을 보는 날 만큼은 예외였다. 그러면 이불 속에 들어가 보다가 점점 졸려지면 머리만 내밀고, 더 졸려지면 어느새 이불 속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섭섭한 일이나 슬픈 일이 생기면 이불 속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불 안쪽은 하얀색 면이었는데, 그 안에 있으면 마치 나만의 공간이 생긴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불 속에 들어가 있으면, 가족들도 대부분 나를 가만히 두었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눈물이 많아서, 이불 속에 들어가서 자주 울기도 했었기 때문에 생긴 무언의 용인이었다. 생각해 보니 지금도 이불속이 편하다. 아무리 마음이 지치고, 몸이 슬퍼도 이불속에 들어갈 수 있으면 치유할 수 있다. 그렇게 이불속에서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울기도 하고, 지쳐서 잠이 든다. 깨어나면 몸과 마음이 한결 회복되어 있다. 드디어 내가 좋아하는 것, 쭉 좋아해 오던 것 하나를 찾았다.
따뜻한 이불속!
이불속 에피소드를 엮어서 에세이를 하나 써볼 까 싶다. 이래서 이불속으로, 저래서 이불속으로, 그래서 이불속으로 그리고 다시 이불 밖으로 나오는 이야기.
https://youtu.be/3ULd0iD26LY?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