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 중간에도 낙이 온다

낙은 순간이다.

by 글치

“Enjoy the little things, for one day you may look back and realize they were the big things.”

— Robert Brault


“고생 끝에 낙이 온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말입니다. 국민학교 시절, 그때의 저는 무슨 고생을 했다고 이 말이 그토록 인상 깊었을까 싶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저는 ‘고생’이라는 단어의 무게조차 몰랐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각자의 고생이 있습니다. 인생의 고생은 나이를 먹는다고 줄어들지 않습니다. 물리적 고통은 과거보다 줄었지만, 복잡해진 사회와 산업 구조는 우리에게 새로운 형태의 고생을 만들어냅니다.


이 끝없는 고생의 다양성 속에서 ‘고생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일’은 어쩌면 절망적입니다. 고생의 끝에는 죽음만 남을지도 모르니까요. 극단적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이 고생이란 녀석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고3 수험생 때는 ‘이것만 지나면 끝’이라 믿었지만, 대학 생활도, 군 생활도, 대학원도, 직장도 결국 또 다른 고생의 이름이었습니다.


보물을 찾아 헤매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처럼, 결국 ‘보물을 찾고 끝나는 이야기’가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끝에 보물이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데, 그저 끝만 바라보고 살기엔 인생은 너무 길고 피곤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합니다.

고생은 끝나지 않지만, 그 중간에도 분명 낙이 있습니다.


힘들었던 하루를 돌아보면, 어딘가에 웃음을 짓게 한 순간이 있습니다. 오늘도 그랬습니다. 눈이 충혈될 정도로 피곤했지만, 점심 후 잠깐의 산책길에서 마주한 햇볕이 따스했고, 그 아래에서 불어온 바람은 뺨을 스칠 때마다 묘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하늘은 맑고 높았습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가을 하늘이었죠. 그런데 문득, 이 계절이 너무 짧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하늘이 더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그만큼 가을 하늘의 희소가치는 높아지고 있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올려다보지 않으면, 그 낙의 순간을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집 문을 열자마자 코끝을 감싼 된장국 냄새도 그랬습니다. 그 구수한 냄새 속에는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는 위로가 담겨 있었습니다.


낙은 생각보다 자주, 사소한 얼굴로 찾아옵니다.

늦은 밤, 이메일 하나를 마감하고 의자에 기대어 마시는 커피 한 모금,

퇴근길에 우연히 흘러나온 학창 시절의 노래 한 곡,

현관 앞에서 반갑게 달려오는 아이의 웃음소리.

그런 순간들이 쌓여 하루의 고생을 부드럽게 덮어줍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고생 자체가 낙이 되기도 합니다.

새벽 비행기로 떠나는 가족 여행길,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도 서로 웃던 모습, 좁은 숙소에서 뒤섞인 웃음과 피곤함까지. 그 고생스러움조차 나중에는 행복의 일부로 남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고생을 낙으로 바꾸는 능력’,

그리고 ‘고생과 고생 사이에서 낙을 포착하는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두 가지가 있다면, 굳이 고생 끝의 낙만 기다릴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 중간에도 낙 속을 걷고 있으니까요.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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