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는 고개를 숙이고, 결국 베인다.

익은 벼의 딜레마

by 글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들 말합니다. 이 속담에는 잘 언급되지 않는 결말이 있습니다. 익은 벼는 결국 베어집니다.

어릴 적부터 유교적 겸손을 배우며 자란 사회에서 저는 ‘익을수록 숙인다’는 말을 거의 절대적인 삶의 태도로 받아들였습니다. 누구 앞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조금이라도 익었다면 숙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익지도 않았는데 익은 척 고개를 숙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겸손의 코스프레였습니다.


고개 숙임은 무조건적이면 안됩니다.

겸손이 의미를 가지려면 정말 익은 시점이어야 하고,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의 숙임은 때로 굴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내가 어느 정도 익었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여야 할 순간도 있습니다.

겸손과 굴복을 구분하지 못하면 숙임은 오히려 오해를 만들기도 합니다.


Cs 루이스는 “자신이 겸손하다 느끼는 순간, 사실은 이미 교만해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겸손을 자랑처럼 사용하는 마음, 익지도 않았는데 먼저 숙여버리는 행동—이런 것들이야말로 가장 교묘한 형태의 교만일 수 있습니다. 겸손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죠.


저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임직원 전체 앞에서 발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름 공들여 준비했고, 청중에 맞는 흐름을 만들려고 여러 번 다듬었습니다. 예상 질문도 미리 정리하며 가능한 한 완성도 있는 시간이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발표 중 질문도 유난히 많았고, 반응도 좋았습니다. 끝나고 대표님께서 직접 칭찬까지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칭찬을 받는 순간,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유, 운이 좋았습니다.”

“뭐, 다들 하는 거죠.”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준비한 노력은 사라지고, 제가 아닌 ‘운’이 대신 무대에 서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던 한 동료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운이 아니라 준비 많이 한 거 같은데 뭘. 보면 다 알아요.”


그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제가 스스로를 낮춘다는 이름으로 한 말이 사실은 나의 노력뿐 아니라, 함께 고생한 사람들의 몫까지 축소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잘못된 겸손은 나를 작게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기여까지 흐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성과는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동료들, 협업 관계자들, 시스템과 환경이 함께 만든 결과입니다. 그 몫을 독점하지 않는다면, 인정에 감사로 답하는 것은 결코 교만이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팀과 함께였기에 가능했습니다.’

‘기쁩니다. 앞으로의 일도 기대되고 있습니다.’


이런 대답은 오히려 성숙한 태도에 가깝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익음에서 출발한 자연스러운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먼저 익는 것입니다.

익지 않았는데 숙이는 겸손 코스프레는 가장 위험합니다. 설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면, 그저 제초 대상이 될 뿐입니다. 익은 척하며 겸손을 연기한다면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고개를 숙일 자격은 익은 벼에게 있습니다.


잘못된 고개 숙임은 목베임을 초래합니다.

겸손은 숙임에서 시작되지 않고, 익음에서 시작됩니다.

먼저는 익기를 노력합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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