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사실 금수저!
미운 오리 새끼는 백조에 대한 별칭이었을 뿐.
미운 오리 새끼는 결국 전혀 안 미운 '백조'가 된다. 미운 오리 새끼의 주인공에게 백조가 그렇게 선망의 대상이고 성공의 상징이었다면, 백조가 된 주인공, 아니 백조가 될 수 있는 주인공은 타고난 '금수저'에 해당할 것이다.
주인공을 미운 '오리'로만 보고 있던 오리들이야 말로 '나는 오리로 태어났으니 백조는 꿈도 꿀 수 없구나'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그야말로 나는 조류의 흙수저 인가보다 하며, 날아가는 백조를 하염없이 바라만 봤을 것이다.
백조로 태어나면, 살아가면서 미움과 서러움을 당하고, 어떤 어려움이 와도 백조가 되는 거다.
반면에 자기들끼리는 행복한 것 같았고, 오리라는 자부심 갖고 살려고 해도, 영원히 오리일 수밖에 없는 운명.
백조를 미워한다고 백조는 망하지 않았다. 오리가 백조가 될 수 없고, 백조는 오리가 되지 않는 게 이 동화의 진실이다.
그래 봐야 오리! 망해도 백조!
그런데 한편으론 왜 오리는 백조를 멋있다고 생각했을지가 의문이기도 하다.
흰색이어서? 키가 커서? 왠지 유색인종과 백인종을 비교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새의 종류보다 그 새가 어떤 삶을 살았느냐가 더 중요한 기준이 돼야 할 텐데. 그렇게 봐주지 않는 게 현실이다 보니 슬플 뿐이다.
백조 고기도 먹기는 먹는다는데, 오리고기만큼 맛 좋은 음식이 없음에 나는 오리에게 한 표를 주고 싶다.
어차피 오리가 백조 되지 못할 것이라면, 멋진 오리의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