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 교수의 ‘노는 만큼 성공한다’를 읽고
학창 시절 잘 노는 아이들이 있었다. 나는 노는 축에도 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존재감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논다’는 말은 그렇게 내가 다가가기 어려운 말로 느껴졌다. 앞에 나서고, 노래나 춤을 잘하거나, 누가 봐도 웃긴 아이, 뭔가 멋짐을 갖고 있는 아이들… 나와는 다른 존재들이었다. 자존감을 위해서 내가 선택한 것은 ‘논다’의 반대 말로 느껴진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성적이 오르면서 그래도 외롭진 않게 되었다. 존재감이란 게 조금은 생기기 시작했다.
대학에 와서는 노는 척을 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말 노는 아이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일 년간 미팅 자리를 열심히 찾아다닌 결과, 경쟁력이 없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신기하게도 ‘그래도 난 좋은 사람인데, 누군가는 나를 알아보겠지’라는 기대감이 생겼다. 아주 오랜 후에 짝을 만나게 되었고, 분명 잘 놀아서 만난 것은 아니다. 그 '논다'라는 거 별거 아니야. 필수적이지 않아 라고 말은 했지만...
라는 제목은 나의 피해 의식을 건드리기 충분했다.
‘결국 잘 놀아야 하는 건가?’
‘난 못 노는데…’
그리고, 꼭 이 책을 읽고 싶어 졌다. 비판을 통해 잘 놀지 못해도 성공한다는 진리를 얻고 싶었던 속마음이 있었던 게다. 그런데 의외의 수확을 얻게 되었다. 매우 기뻤고, 김정운 교수님이 좋아졌다. 내가 ‘논다’를 잘 못 알고 있었다는 점을 깨우쳐 주셨다. 그리고 의외로 나는 잘 노는 사람이었다. 이 정도 반전이면, 책값은 뽑고도 남았다고 생각한다.
노는 것은 결국 공감하기가 핵심
아이가 자주 상황극을 한다. 길쭉하게 생긴 수면 베개는 공룡이 되기도 하고 자동차나 비행기가 되기도 한다. 그 상황에 맞춰서 함께 젖어들어주는 것. 육아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이러한 능력이 결국 창조성과 관련이 있고, 협업과 관련이 있다고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었다.
아 이런 거라면 나는 좀 되긴 하는 거 같다. 앞에 나서서 '인싸'의 모습을 보여주진 못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대화의 순간, 회의의 순간, 협상의 순간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그런 것이 잘 노는 사람의 특성으로부터 개발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아이와 함께 노는 것이 결국 아이와 나 모두에게 큰 자산이 되어 준 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더 열심히 놀아 주어야겠다. 비록 놀아줄 시간적 여력이 많지 않은 한국의 직장 현실이지만.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함께 할 시간과 명분이 많이 생긴 거 같다. 그런데 오히려 정서의 공유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된다. 아이의 마음을 몰라서라기 보다는 정서를 공유할 만한 마음의 여력이 없어져서 그럴 때가 있다. 더 이상 아이의 공룡세계에 나타난 티라노 사우르스가 될 수 없는 체력적인 한계를 느낄 때, '아빠 공룡 아니야'라고 말하고 놀이를 끝내기도 했다. 아이는 공룡에 대한 무서움보다 아빠가 더 이상 공룡이 아닌 아쉬움이 큰 것같다. 공감이 끝나는 것에 대한 아쉬움.
정서 공유의 놀이. 의사소통 능력이 조직의 핵심
정서가 공유될 수 없는 사람과의 의사소통은 그 자체가 고통이다. 그런 분들은 어려서부터 공감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자랐을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사실 나의 앞 세대들에겐 '공감'이란 단어는 사치였을 것이다. 그분들에게 공감을 바라는 것도 사치 아닐까. 지금이라도 공감을 못하는 그분들에게 내가 공감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MZ세대와 베이비부머 세대 사이에 끼어 있는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다리'역할이 자주 주어진다. 위로 아래로 공감할 수 있어야 소통이 고통이 되지 않는다.
가끔은 이런 상황의 누적이 주는 피로감이 나를 지치게 한다. 쉬고 싶고, 쉬고 싶어 진다. 그런데 이 책은 또 쉬는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휴테크는 단순히 쉬는 기술 노는 기술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한 기술이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쉽지 않고, 여러 일상이 무너진 뒤로 쉬는 것은 쉽지 않아 졌다. 정확히 말한다면, 단순히 쉬는 기술로는 더 이상 쉴 기회가 없어진 샘이다. 남들 다 간다는 곳을 따라 방문해서 기념사진, 기념품, 등을 챙겨 오는 여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못 가게 되니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진짜 그런 걸 좋아하나? 코로나 직전에 아내와 함께 간 일본 출장길이 생각난다. 일정이 빡빡해서 여행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일과 시간이 끝난 뒤 호텔 근처 동네를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의 여력만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발견한 안 유명하지만 맛있는 집들과 골목골목 배어 있는 그들의 사람 사는 냄새들, 그리고 동네 작은 마트에서 발견한 정말 사고 싶었던 물건. 이런 기억들이 2박 3일의 출장을 여행보다 즐거운 추억으로 떠오르게 해주고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나의 취향을 발견하고 그것을 채우는 것이 휴테크의 기본 기술이 아닐까? 책에는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재미있어하는 일이 분명해야 한다.
그렇다. 내가 재미있어하는 일이 뭔지 너무 관심이 없었다. 내가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니. 뭔가 나에게 미안해진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만히 앉아 나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나는 책을 생각보다는 좋아했다.
나는 커피를 그 향을 참 좋아한다.
나는 사진을 좋아하고, 사진에서 위로와 영감을 얻기도 한다.
나는 참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나는...
좋다. 나에게 관심 갖기. 재미있어하는 일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짬짬이 채워주면 성취감과 행복감이라는 것이 천천히 차오른다.
그리고 글쓰기도 그 중에 하나의 방법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