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
나는 안다.
책방을 한다는 사람 중에 책을 제일 적게 읽는 사람일 거고, 책방을 한다는 사람 중에 일기를 안 쓰는 혹은 작은 습작 조차 하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평생 일기라는 것을 써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초등학교 때 방학 숙제였던 일기는 제하도록 한다. 그것은 썼다고 할 수 없다. 개학 일주일 전에 매번 몰아썼으니, 엄마가 썼나, 안 썼나 감시도 했던 것 같은데 언제나 개학 일주일 전에 썼으니 일기를 썼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매년 모두가 가진다는 다이어리 욕심 또한 없다. 쓰지 않을 걸 아는 사람은 욕심조차 생기지 않는다. 나름 자기 객관화가 잘 된 편이랄까. (다이어리 말고 다른 곳에 돈을 쓰지만)
새해가 되고 열흘 그리고 조금 더 지났다. 늘 거창한 새해 다짐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나는 P형의 인간이고, 지켜지지 않는 약속은 하지 않는 것이 좋으니까. 그래서 이런 이유로 새해 다짐을 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2023년에는 조금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거의 사장되어있던 브런치를 열어보았다. 알람을 꺼두지 않은 탓에 브런치는 때가 되면 작가님 N일을 작가님의 글을 보지 못했어요. 하고 울어주었기 때문이다. 그 울음에도 딱히 가책을 느낀다거나 그렇지 않았다. 왜냐하면 역시 나는 내가 그럴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다짐을 위해 이렇게 주절주절 해보는 것은 꽤나 큰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틀에 한 번은 브런치에 글을 올려보려고 한다. 거창한 포부가 있거나 그런 것은 역시 아니다. 나는 대부분의 일상을 인스타그램에 짧게 올려두었었고, 또 그만큼 특별하지 않은 일상들은 자연스럽게 스킵해두길 여러 번이라 (그리고 매우 집순이라) 무언가 기억될 만한 것들은 대부분 인스타그램에 있으나, 그 마저도 가끔은 기억이 애매할 때가 있다. 요즘 주로 하는 생각은 내가 나의 감정들을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는 특별한 일상 속에서도 짧게 남긴 인스타에도 내 기억이 애매해질 때가 있는데, 감정이라고 기억이 날까 싶어서이다. 그리고 기록자들이 늘 말하는 그 감정들을 나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다행인지 불행인지 책방지기는 제법 혼자만의 시간이 많다. 회사를 다니면서 분 단위로 살던 일상에 비하면 뭐, 거의 팽팽 놀아재끼는 정도의 기분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제법 많은 시간을 '내 일'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것도 '내 일'의 한 파트라고 생각하고 언제나 그렇듯 열심히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내 일'에 관한 '성과' 쯤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해서 브런치에 '일기'를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텍스트화가 되지 않을까 하여 '아무말대잔치 덩어리' 혹은 아주 예쁘게, 고급스럽게, 우아하게 나 스스로 지금부터 끄적이는 이야기들을 '산문집'이라고 표현해 보겠다. 어느 날은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어느 날은 일기가, 어느 날은 욕만 하는 일상일 수도 있고, 뜬금없이 독후감을 써대는 일상일 수도 있겠다.
생각해 보니 '산문집'이란 꽤나 멋진 장르인 것 같다. 모든 내 마음의 찌꺼기를 글로 뱉어내 묶어버리면 그것은 산문집이 아닌가. 멋진 장르다.
정말 보잘것없는 새해의 다짐이지만 이래 봬도 나는 꽤 큰 맘을 먹었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