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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Bloomer May 17. 2019

여유롭게 삽시다

불확실성 최소화 전략!

사람은 자신이 가진 능력의 100%를 쓰면 안 된다. 자기가 가진 것의 70-80%만 쓰고 나머지는 만일을 대비해 아껴둬야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 능력이나 체력을 비축해둬야 한다. 그래서 집에서는 대체로 누워있다. 



 알쓸신잡의 김영하 작가의 말이다. 처음에는 그저 반농담으로 한 말이겠거니 싶었다. 당시에는 그저 웃어넘겨 버렸다. 하지만 살면서 김영하 작가의 태도가 어쩌면 매우 현명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우리의 인생을 예측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이해를 돕기 위해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겠다.  

누군가와 만날 약속을 잡고 그 시간에 맞춰 나가는 상황에서, 만남의 장소까지 30분이 걸린다면 우리는 약속 30분 전에 나가면 될까? 경험상 시간에 딱 맞춰 가려는 시도가 실패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기어코 딱 맞춰 출발한다면?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적어도 4-5번에 1번 정도는 늦게 된다. 이 때문에 상견례나 회사 면접이 있는 날에는 예상보다 적어도 20분은 빨리 나가게 된다. 늦으면 큰일이 나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매일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계획에 맞춘 우리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우가 잦다. 이를 ‘계획 오류(Planning Fallcy)’라고 부른다. 계획 오류가 약속 시간을 잘못 예측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계획 오류에 빠지지 않고 새해 계획을 세운다면 ‘영어 마스터하기, 일주일에 1권 독서하기, 꾸준히 운동하기’ 대신에 ‘영어 단어 3-4일 보다가 책에 먼지 쌓기, 읽고 싶은 책 사서 책꽂이에 전시하기, 헬스장에 기부하기’라고 세워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복잡계(Complexity System)’인 영역이 많다. 복잡계의 특성은 비선형적이고, 불확실성이 크고,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고, 승자 독식 구조라는 것이다. 쉬운 예로 주식 시장, 유튜버, 작가와 연예인 시장 등이 있다. 이들의 세계는 한 마디로 예측이 불가한 것이 특징이다. 어떤 주식이 오르고 내릴지, 어떤 콘텐츠로 유튜버를 하면 잘 될지, 어떤 책을 쓰고 어떤 가수가 어떤 노래를 내야 1등을 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그저 ‘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행운에 대한 접점은 늘리고, 불운에 대한 피해는 최소화하는 전략을 쓰는 것이 우리로서는 최선의 전략이다. 


 결국 불완전한 인간의 ‘계획 오류’와 복잡한 이 세상의 ‘불확실성’ 때문에 우리는 100%의 노력을 쏟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김영하 작가가 말한 것이 ‘대충 살고 누워있자. 최소한의 일만 하고 오늘을 즐기자’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예측 불가능한 이 세상에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 었다고 추측해본다.  



 나는 공부를 할 때, 전 날 저녁에 다음날 할 공부 계획을 세우곤 한다. 보통은 이런 식이다. ‘음.. 내가 1시간에 30쪽을 본다고 치면, 내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6시간이고, 그러면 30 x 6 = 180, 내일은 180쪽을 볼 수 있겠군!’ 이렇게... 전형적인 계획 오류다. 집중도도 그때그때 다르고 사람이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지칠 때도 있을 것이다. 아예 공부를 못하게 하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계획은 내가 할 수 있는 70~80%의 분량을 계획한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그때 더하면 된다.  


 정량적으로 비교하기 어렵긴 하지만, 운전을 할 때도 적용 가능한 철학이다. 운전을 할 때도 우리는 예측을 하기 어렵다. 내가 아무리 30년 경력 베테랑 운전자라 해도 초보운전자가 브레이크와 엑셀을 헷갈려서 내 차를 받아버린다면… 그래서 운전은 최대한 방어 운전을 하라고 한다. 방어 운전이란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너무 빠른 속도를 내지 않고, 골목이나 횡단보도에서는 속도를 줄이는, 결국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가져 사고 확률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저축을 하는 목적이 다양하겠지만, 그중 한 가지는 미래를 대비해 여유 자금을 만든다는 것이 있다. 언제 큰 사고나 병이 걸려 목돈이 나갈지 모른다. 당장 직장에 짤려 내일부터 쓸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순간이 올지 모른다. 그때, 모아둔 ‘여윳돈’이 없다면 당장 입에 풀칠할 수가 없게 된다. 마찬가지로 어떤 분야든 예산을 짤 때는 ‘예비비’라는 항목을 둔다.  


 우리의 체력도 마찬가지이다. 10대, 20대 초반만 하더라도 모든 체력을 쏟아붓는 운동을 하거나 새벽까지 술을 마셔도 잠 한 숨 푹 자고 일어나면 멀쩡해진다. 회복력도 회복력이지만, 체력이 없어서 정작 중요한 일을  못하는 경우가 잘 없다. 어릴 때는 상대적으로 중요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책임이 무거워지면 질수록 ‘내’가 직접, 그것도 ‘잘’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늘어난다. 그것이 회사일이 될 수도 있고, 아이를 돌보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당장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어느 한 일에 모든 체력을 갈아 넣었다가 예상치 못한 다른 일이 생기면 낭패이지 않은가.  


 예전에 노가다를 하러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오래 일한 아저씨들이 나보다 몸도 좋으면서 일은 설렁설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나는 ‘아니 돈 받고 일을 하는 건데 빨리빨리 움직이지 저 나이 먹고 아직도 저렇게 요령을 피우나’라는 생각에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베테랑의 행동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일은 8시간 정도 해야 하는데, 나는 고작 2시간 만에 체력을 다 써버렸다. 마지막에 가서는 입에서 나오는 욕을 참아가며, 힘을 초장에 다 써버린 나를 원망하며 꾸역꾸역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아저씨들은? 어디다 그런 체력을 숨겨 두었는지 날라다니셨다(물론 일부러 요령을 피우느라 체력을 아낀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 김영하 작가의 ‘온 힘을 다 쓰지 않는다’라는 철학은 아주 현명하고 전략적인 삶의 방식이다.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에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비록 효율은 조금 떨어질지라도 한방에 크게 맞는 사고를 피하게 해 준다.  


앞으로는 나도 아무 일이 없으면 누워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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