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친구들 중에 제일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 있다. 그 친구들을 만나면 가끔 이런 얘기를 하고는 한다.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지?”,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친해져 있더라”
친한 친구라면서 어떻게 친해졌는지 모를 수가 있을까? 친한 친구가 형성된 것에는 대부분 ‘운’이 많이 작용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나는 이 부분을 조금 더 생각해보려 한다.
친한 친구는 대부분 ‘운’으로 만들어진다.
친한 친구, 좋은 친구는 나랑 성향이 가장 비슷한 사람이라는 전제를 하자. 현재 세계 인구가 77억 명이라고 하는데, 모든 사람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모든 사람과 대화를 해서 나와 가장 비슷한 사람 1명을 가려낸다. 분명히 나와 생각, 가치관이 제일 비슷한 사람 1명이 나올 것이다. 그 사람과 베프가 되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현실적인 방법이 아니다. 우리가 대부분 친구를 어떻게 사귀었는지 다시 생각해보자. 학창 시절에는 그저 같은 학교, 같은 반, 같은 동네를 살았다는 이유로 친구가 된다. 물론 그중에서 나랑 잘 맞는 사람, 안 맞는 사람이 어느 정도 가려지지만, 딱 그 정도의 테두리 안에서 가려질 뿐이다. 성인이 되어서는 친구를 만들기가 더 어렵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과 스치며 지나가지만 그중에 나와 관계하는 사람은 정말 소수이다. 굳이 집 밖에서 ‘의도적으로’ 친구를 만들거나 소개받지 않은 이상, 내 일상의 테두리 내에서 친구를 만들 수밖에 없다.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아주 제한적이다.
내 친구를 내가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학교, 같은 과, 같은 알바, 같은 직장이라는 작은 테두리 안에서 선택할 뿐이다. 바로 옆 학교, 다른 과, 건너편 가게 알바, 옆 회사에 77억 분의 1 확률로 나와 가장 잘 맞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없다.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나랑 같은 테두리 안에 없었기 때문이다. ‘운’이 작용하는 아주 큰 테두리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운’으로 만들어진 작은 테두리 안에서만 우리가 통제할 뿐이다.
아니. 그 작은 테두리 안에서도 친한 친구를 만나기란 쉽지가 않다. 이것은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혹은 몇 번의 대화를 통해 잘 알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이루어지는 얘기다. 10년 지기 친구를 잘 아는 것 같지만 막상 친구의 꿈, 가치관, 기호 등을 말하려 하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볼뿐이다. 나는 30년 가까이 365일, 24시간 나를 관찰했지만 아직도 나를 잘 모르겠다. 그런데 잠깐잠깐 만나는 친구를 깊이 알 방법이 어디 있을까.
사람에 대해 잘 알려면 그 사람의 평소 모습보다는 ‘극한 상황’을 보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힘든 상황을 대처하는 방식에서 그 사람의 생각이 드러난다. 하지만 일상에서 그런 면을 관찰할 기회가 적다. 막상 그런 기회가 와도 남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을 신경 써서 진정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일상적인 얘기를 몇 마디 나눈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게 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말한다고 지금껏 친하게 지내온 친구들이 ‘진짜 친한 친구’가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 인구를 다 모아놓고 이상형 월드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한, 관계가 만들어지는 방식에 ‘운’이 매우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친한 친구라 생각했던 사람이 나를 괴롭게 만들 때도 있고, 첫인상부터 별로 였던 사람이 절친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창 시절 ‘우연히’ 만들어진 친구로 관계를 제한하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다. 아직 밖에는 잠재적으로 친한 친구가 될 사람이 넘쳐난다. 그 사람들과 ‘접점’이 없었을 뿐이고, 만났다 하더라도 자신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연구에 따르면 자주 만나고 친밀하게 느끼는 ‘강한 유대 관계’보다 오히려 이름이나 얼굴만 알고 자주 교류하지 않는 ‘약한 유대 관계’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약하게 연결된 관계를 늘리고 열린 마음을 가져보자. 혹시 어떤 접점으로 이어져, 어떤 기회를 만나 내 일생의 파트너를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