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하면 매번 늦는 사람이 있다. 나도 옛날부터 매번 약속 시간에 딱 맞춰 나가는 버릇이 있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기면 비굴한 사과 문자를 보내면서 뛰어야 했다. 사실 이 차이는 1시간 차이도 아니고 고작 5분에서 10분 정도의 차이가 대부분이다. 내 계획보다 10분 정도만 일찍 나와도 거의 대부분 늦지 않는다.
기다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꼼짝없이 5분, 10분을 날리게 된다. 기다리면서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도 보고 인터넷 좀 보고 있으면 안 되냐고 하는 사람들은 뭐가 문제일까. 단지 10분 기다림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에게 주도권을 뺏는 행동이다. 내 시간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고 기다림에 종속된다.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사람은 자율성을 빼앗겼을 때 매우 고통스러워진다. 계속 늦는데 죄책감이 없다는 것은, 단지 10분 늦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함부로 다뤄도 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자기가 직장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 새똥을 맞았다고 했다. 중요한 면접이라 하필 30분 일찍 나갔었던 터라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 새똥을 맞은 것이다. 그래서 근처 카페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젖은 상태로 면접을 갔다. 새똥을 맞았으니 액땜했다 치고 면접을 잘 보겠지 생각했지만 면접은 그대로 떨어졌다. 그분의 어머니는 아직도 이 얘기만 나오면 타박하신다고 한다. 시간에 맞춰 갔으면 새똥에 맞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그분은 어머니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새똥을 맞은 건 재수 없는 일이었지만 본인이 예측할 수 있는 범위의 사건이 아니었다. 어차피 예측할 수 없는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면 30분이 아니라 5분만 일찍 갔었다면, 그런데 새똥을 맞거나 흙탕물이 튀거나 하는 예측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면? 뒷수습을 하느라 면접에 늦었거나, 새똥을 그대로 묻힌 채로 면접을 봐야 했을 수도 있다. 30분 일찍 나가서 새똥을 맞은 것이 아니라, 30분 일찍 나갔기 때문에 그런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대처를 할 여유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여유 시간을 빼두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 지금도 노력 중이다. 아직도 예전 습관이 남아서 약속 시간에 딱 맞춰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원칙은 약속 시간의 20분은 일찍 가는 것으로 정했다. 그리고 20분 동안 가서 책을 읽으면 된다. 평소에 책 읽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데, 그렇게라도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약속 시간에도 늦지 않고 자투리 시간도 활용하고 일석이조가 아닌가. 어차피 그 시간에 집에 있어봐야 딱히 생산적인 일을 할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습관 덩어리일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작은 습관들이 쌓여 우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인생을 여유롭게 계획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습관을 만들어 놓는다면 ‘충격’이 왔을 때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촛불은 바람에 훅 꺼져버리지만, 모닥불은 바람에 더욱 타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