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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teBloomer Oct 17. 2019

우리는 모두 친구

피카피카

 언젠가부터 우리나라 나이 문화에 대해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1살 차이, 한 학년 차이로 누구는 깍듯이 존대받고 누구는 하대 받으며 그 사람의 말에 복종해야 하는 문화. 이것이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군대와 대학교인 것 같다. 2년도 안 되는 시기에 대부분 한두 살 차이일 뿐인 군대에서 고작, 진짜 고~~~ 작 한두 달 (아직도 한두 달 차이로 선임 노릇 했던 꼴값 선임 생각만 하면 억울하다) 차이밖에 안 나는데 깍듯이 모셔야 한다. 중고등학교야 거의 같은 학년끼리만 생활하니까 선후배랑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고 쳐도 대학교는 여러 학번, 학년이 섞여서 수업을 듣는 경우가 있고 학교 생활을 많이 하면 할수록 선후배와 많이 부딪치게 된다. 군대보다야 낫지만 대학교에서도 1, 2년 차이가 꽤 큰 차이이고 4년 정도 차이가 나면 감히 말도 함부로 못 거는 존재처럼 보인다. 물론 선배 입장에서 그렇게 까지는 아니었겠지만 후배들의 분위기라는 게 그랬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만. 나는 그런 게 싫어서 18학번과 같이 조별 과제를 한 적이 있는데(나는 10학번) 꼬박꼬박 존대하고 대등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20대 초중반에는 나도 한두 살 후배들이 슬금슬금 말을 놓으려 하거나 동갑 친구 대하듯이 나를 대하면 속으로 싸가지 없다고 욕을 하고는 했다. 하지만 점점 이런 사고방식이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내가 고작 몇 살 많다는 이유로 깍듯이 대접을 받고 후배들에게는 막 해도 되는 걸까. 나이를 먹은 건 내가 노력한 게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부모님이 나를 빨리 낳아주신 것 밖에 없는데’. 20년이 넘는 사회적 관성이 있어서 한 번에 바꾸지는 못하지만, 주변 친한 후배들이 나를 편하게 대하도록 노력한다. 말을 놓든 친구처럼 대하든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싸가지 없는 건 제외. 동갑이라도 싸가지 없는 건 싫지 않나?). 


 주변에 이런 얘기를 가끔 하면 그게 유교 문화 때문이라고들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찾아봤다. 그런데 유교 문화는 아닌 것 같다. 우선 유교 문화라고 ‘착각’하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아무래도 삼강오륜에서 ‘장유유서’가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유교를 국교로 하는 조선시대에서도 나이로 친구의 기준을 삼지는 않았다. 나이에 따른 차이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한두 살 차이로 계급을 나누듯 하는 문화는 아니었다. 나이가 많이 차이 나기는 해도 뜻이 맞고 생각이 맞으면 친구처럼 지냈다. 지금처럼 한 학번 높다고 심부름시키고 하는 문화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실제 오성과 한음으로 알려진 이항복과 이덕형은 5살 차이가 나는데도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임진왜란에서 큰 공을 세운 류성룡과 이순신 또한 세 살 차이였지만 친구처럼 지냈다고 한다. 유학의 기본 교과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소학(小學)'과 조선 중종 때 박세무 등이 엮어 서당에서 가르친 '동몽선습'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나이가 많은 것이 배가 되면 어버이처럼 섬기고, 10년이 많으면 형처럼 섬기고, 5년이 많으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따라가니….’ 즉 5년 정도의 나이 차이는 친구처럼 지냈다는 뜻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교제하는 벗을 '나이를 잊는 친구 사이'라는 뜻으로 망년지우(忘年之友)라고 하는데, 안동 출신 재일교포 윤학준이 쓴 양반 문화를 다룬 책을 보면 망년지우를 사귈 수 있는 나이가 상팔하팔(上八下八)이라는 말이 있다. 위로 여덟 살, 아래로 여덟 살까지는 친구로 지낸다는 뜻이다.


 그럼 대체 이 지긋지긋한 나이 문화는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까. sbs 스페셜에 나온 오성철 교수(서울교육대학교 한국 근현대 교육사)는 나이에 따라 계급화되는 문화가 식민지 시절 일본의 군사 통치 문화의 잔재라는 얘기를 한다. ‘상급자에게는 무조건 복종한다’, ‘상급생은 신이다’ 이런 인식을 심어 놓아야 통제하기 수월했기 때문에, 이런 군대식 문화를 일찍이 학교에서부터 철저히 가르쳤기 때문에 그 문화가 지금까지 흘러내려왔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문화가 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 부활해 나이-서열 문화를 더 확고히 다졌다는 게 오성철 교수의 주장이다. 



 이와 연결해서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는 ‘너’에 해당하는 2인칭 대명사가 존대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상대의 정보를 알기 전에는 마땅히 상대를 부르기 어렵다. ‘사장님’, ‘이모’, ‘삼촌', ‘선생님’으로 부르게 된다. ‘교수님’, ‘기사님’, ‘부장님' 같은 특정 직업에 관련된 사람이 아니고서야 딱히 부를 호칭이 없다. 그래서 나이를 따지게 되고 형, 언니 - 동생으로 관계가 제한되는 것이다. 문어체에서는 ‘당신’, ‘그대’, ‘댁’ 정도가 있지만 구어체로는 자연스럽지 못하고 잘못 ‘당신이-‘, ‘댁이-‘ 이런 식으로 부르면 기분이 나쁠 수가 있어서 잘 안 쓰게 된다. 구체적인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호칭을 할 수 없어 불편하고, 관계가 형성이 되면 얘기가 제한되게 된다.



 말은 급진적으로 보이게 하더라도 실제로는 나도 이 문화에 대체로 순응하며 살아간다. 1살이 많으면 깍듯이 높여 부르고 어느 정도 거리감을 갖고 상대를 대한다. 후배들도 편하게 대하고 싶지만 기존 질서에 익숙해진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자 바뀐다고 딱히 변하지는 않는다. 생각해보면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부부들도 서로 존중하며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가부장적인 문화가 일부 남아있지만 그래도). 우리 부모님도 12살이나 차이 나지만 서로 존중하며 잘 살아가신다. 적어도 둘 사이에 나이로 대접받으려는 태도가 없는 것 같다. 결국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나이 한 살 차이가 무슨 이등병과 병장의 차이 마냥 호들갑을 떨어왔는데, 사실 시대가 조금씩 변하면서 수직적인 문화가 점점 없어지는 추세이기는 하다. 내가 대학교 1학년때는(라떼는 말이야…) 선배들 담배 심부름도 한 번씩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설마 그런 심부름은 안 시키겠지. 어떤 대학은 선후배의 틀을 깨고 동기들끼리도 전부 ‘OO 씨’라고 부른다고 한다. 불편한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변하는 게 어느 정도는 맞다고 생각한다(다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러면 한국의 ‘정’이 더 이상 없어지지 않겠냐고 반박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일리 있는 얘기지만 ‘정’이라는 명분으로 ‘갑질’을 자행하는 문화는 득 보다 실이 더 많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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